분류 전체보기 438

달맞이

내 어린날의 삽화 중에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한 해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펼친 놀이마당에서 고깔모자를 쓰고 신명나게 장구를 치던 키가 껑중한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그시절의 내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어버린 나는, 지금도 보름달이 뜨면 귓가에 풍물소리가 들리는 듯해 달맞이를 나선다. 높은 산에 올라 일출을 맞는 것과는 달리 달맞이는 그저 달이 보이는 곳이면 어디라도 좋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땅거미가 내려앉기도 전에 둥근달이 솟는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뒷마당이나 다름 없는 궁동초 운동장에서 달맞이를 한다. 귓가에서는 풍물패 소리가 쟁쟁거리고 마음은 꽉찬 보름달처럼 넉넉해진다. 텅 빈 운동장에 서서 잠시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그림일기 2008.11.14

사랑이면

한 일본 기자가 질문했다.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늘 받던 질문이어서 나는 평소대로 대답했다. "조르지 아마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윌리엄 블레이크, 헨리 밀러입니다." 통역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헨리 밀러요?" 그러나 그녀는 이내 질문을 던지는 건 자신의 본분이 아님을 깨닫고 통역을 계속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나는 그녀에게 내 대답에 왜 그렇게 놀랐느냐고 물었다. 혹시 헨리 밀러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냐고. 어쨌든 그는 내게 거대한 세상을 열어준 사람이고, 그의 작품에는 현대문학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에너지와 생명력이 담겨있다. "헨리 밀러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저도 무척 좋아하는 작가인걸요." 통역자가 대답했다. "그가 일본 여자와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