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98

봄, 어느날

일요일 아침,나즈막한 미륵산의 봄빛이 골속골속 들여다 보일만큼 시계가 탁 트였다.뒷발코니 창을 열고서 그 맑고 깨끗한 봄의 빛깔과 향기를 흠씬 들이켜고 들어와 거실에 앉아 있는 남편을 향해 혼잣말인양 중얼거린다." 왜 하필 오늘 같는 날 모임을 하나? 그것도 어중간하게 점심때 말야. 다른때는 저녁에 잘도 하더구만. 난 산에나 갔으면 딱 좋겠구만..."아내의 조금은 억지스런 투정을 남편은 듣고 있기나 하는건지 아무런 대꾸가 없으니 그 속을 도통 알길이 없다. 늦은 아침을 먹은 후에 남편과 둘이서만 가족모임엘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아이들 어렸을때부터 가졌던 가족모임 이건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터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급기야 아이들에게 가자는 말도 안하고 아이들 역시 가겠다..

그림일기 2009.04.27

달맞이

내 어린날의 삽화 중에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한 해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펼친 놀이마당에서 고깔모자를 쓰고 신명나게 장구를 치던 키가 껑중한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그시절의 내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어버린 나는, 지금도 보름달이 뜨면 귓가에 풍물소리가 들리는 듯해 달맞이를 나선다. 높은 산에 올라 일출을 맞는 것과는 달리 달맞이는 그저 달이 보이는 곳이면 어디라도 좋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땅거미가 내려앉기도 전에 둥근달이 솟는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뒷마당이나 다름 없는 궁동초 운동장에서 달맞이를 한다. 귓가에서는 풍물패 소리가 쟁쟁거리고 마음은 꽉찬 보름달처럼 넉넉해진다. 텅 빈 운동장에 서서 잠시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그림일기 200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