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봄, 어느날

연이♥ 2009. 4. 27. 11:07

 

 

 

 

일요일 아침,나즈막한 미륵산의 봄빛이 골속골속 들여다 보일만큼 시계가 탁 트였다.뒷발코니 창을 열고서 그 맑고 깨끗한 봄의 빛깔과 향기를 흠씬 들이켜고 들어와 거실에 앉아 있는 남편을 향해 혼잣말인양 중얼거린다." 왜 하필 오늘 같는 날 모임을 하나?  그것도 어중간하게 점심때 말야.  다른때는 저녁에 잘도 하더구만. 난 산에나 갔으면 딱 좋겠구만..."아내의 조금은 억지스런 투정을 남편은 듣고 있기나 하는건지 아무런 대꾸가 없으니 그 속을 도통 알길이 없다.

 

늦은 아침을 먹은 후에 남편과 둘이서만 가족모임엘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아이들 어렸을때부터 가졌던 가족모임 이건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터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급기야 아이들에게 가자는 말도 안하고 아이들 역시 가겠다고 따라 나서지도 않는 어른들만의 부부모임이 되어버렸다.네 가족 합하여 아이들이 아홉 명인데 모두 아들뿐이다보니 딸도 못낳는 반편들이라 해서 난 이 모임을 '반편들의 모임'이라 부른다.

 

 

 

 

 

오늘 모임은 시골에서 자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남편 친구의 공장에서 갖기로 했다.만경강을 건너는데 탁 트인 들판 위로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 자꾸만 산으로 향하는 마음을 달래주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긴다.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언제나 그렇게 내마음도 두둥실 하늘을 떠다닌다.

 

 

 

 

 

오늘의 요리는 남편 친구가 전날부터 참옻을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토종닭을 넣어 만든 옻닭백숙이다.여덟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의 손님을 치르려면 주부들도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인데 친구들에게 몸에 좋다는 옻닭을 직접 해먹이고 싶어 하루전부터 수고를 아끼지 않은 남편 친구가 너무도 고맙다.

 

아내에게 수고를 끼치지 않고 직접 요리를 자청해서 그런지 남편 친구의 서투른 손놀림이 오히려 우리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데다 재료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듬뿍 들어간지라 맛 또한 진하고 구수한게 최고였다.

 

옻이 위에 좋다며 위가 부실한 내게 자꾸만 진하게 우러난 국물을 많이 마시라면서 국물을 따라주는 남편,평소 워낙 말이 없다보니 그 마음을 알길이 없더니만 가끔은 이렇게 말 대신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할때도 있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모처럼 낮에 만났으니 바닷바람도 쐴겸 변산반도엘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변산반도 해안을 따라 펼쳐질 산과 바다의 풍경을 생각하니 산에 가지 못해 괜시리 골이 났던 마음이 스르르 풀려버린다.

 

부안 들녘 곳곳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바로 들판을 따라 차를 달리다보면 드문드문 만나게되는 유채꽃밭 풍경이다.차를 세우고 잠시 카메라를 꺼내보지만 커다란 먹구름이 낮게 깔려있어 빛이 아쉽다.

 

 

 

 

 

 

 

 

격포 채석강에는 바닷물이 넘실거려 들어가지 못하고 적벽강엘 갔는데 적벽강 주변에도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어 바람 불어 파도 일렁이는 바다와 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져 제주의 그것 못지않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도무지 물러날 기미가 안보이는 낮게 깔린 먹구름 때문에 변산반도의 황홀한 낙조는 볼 수 없었지만,

 

곰소항 어느 횟집에 모여 앉아 집에 있는 아홉 명의 아들 녀석들 저녁 걱정은 잊은채 운전 때문에 술을 못하는 남편들을 대신해 아들밖에 못낳는 반편 아내들은 부안의 명물 뽕술을 거푸 마시며 노을빛보다 불게 얼굴을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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