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오월, 무등산

연이♥ 2013. 5. 19. 12:15

 

 

부처님의 자비로 3일간의 연휴가 주어졌지만,

딱히 오라는데도 없고, 마땅히 갈데도 없고, 특별한 계획도 없이 연휴를 맞이한다.

그래도 3일 동안 집에만 있기엔 월급쟁이로서 연휴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어 산행 계획을 세워본다.

무등산 국립공원 승격(2012년 12월 27일)을 축하하는 산행을 한 번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이 늘 숙제로 남아있었기에 오월의 광주를 찾기로 한다.

 

* 증심사지구(10:30) - 새인봉 - 중머리재 - 장불재- 서석대(정상) - 장불재 - 백마능선 - 장불재 - 중머리재 - 토끼등 - 증심사지구(18:00)

  총산행시간 : 7시간 30분

 

증심사지구 정비사업을 처음 시작할때 신년산행을 다녀온후로 4년여만에 다시 찾은 무등산이다.

주차장에서부터 증심사까지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먹거리집들이 모두 철거되고 계곡과 숲을 복원해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오늘은 모처럼 여유롭게 무등의 품안에서 쉬어가리라 작정한터라 산행 시작전부터 분홍의 병꽃에 홀려 한참을 꽃길에 머물러본다.

 

 

새인봉 삼거리

 

 

앞서가는 세 처자들의 유쾌한 수다를 벗삼아 오르다보니 어느덧 중머리재에 도착했다.

중봉과 장불재,서석대,천왕봉의 둥글둥글한 봉우리들이 한 눈에 조망되는 곳이다.

그.리.하.여 이곳에 서면 언제나 눈이 먼저 시원스레 트이고 뒤따라 가슴 또한 확 트인다.

 

 

이사진,

맘에든다.

모델이 되어주신 이름모를 누군가에게 감사할 일이다.ㅋ

 

흠..

예전 카메라에 비해 지금의 카메라가 초록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군!

최상의 렌즈라는 나의 두 눈으로 본 오월 무등의 초록빛은 분명 마치 포토샵을 한 듯 연초록빛이 너무도 선명했었는데 말이지..

이때만해도 하늘이 흐렸다.

 

 

중머리재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장불재로 출발~

 

 

좌 서석대(瑞石臺), 우 입석대(立石臺)

 

 

아~

장불재의 바람바람바람 그 무수한 바람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바람 한 점 불지않는 장불재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규봉암을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땡볕 아래 길게 줄지어 서있다.

이렇듯 고요한 장불재, 이렇듯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는 장불재, 그러고보니 오월에 무등산을 찾은것 또한 이번이 처음이로구나..

 

 

☆ 무등산 주상절리대(천연기념물 제465호)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을때 수축되어 생기는 절리 중에 단면이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기둥모양인 것을 말한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약 7천만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서석대,입석대,규봉이 대표적이다.

입석대,규봉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이지만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을 하고 있다. 

 

 

 

 

 

입석대..

돌기둥 꼭대기에 고고하게 피어있는 철쭉이 압권이다.

어느 바람이 꽃씨 하나 옮겨놓아 저토록 웅장한 돌기둥에 꽃을 피웠을까..

 

 

정상 오르는길에 뒤돌아서서 저곳 백마능선을 바라볼때면 언제나 갖게되는 생각 하나,

저곳에 서서 무등을 바라보고 싶다..

까짓거 오늘 한 번 그리해보자꾸나.

 

 

 

서석대(해발 1100m)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에는 무등산의 면적이나 그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인구 백만이 넘는 도심에 해발 천미터가 넘는 산이 그리 흔치 않은데다,

산정상에 주상절리가 밀집해 있다는 희소가치가 국립공원으로 승격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생태적으로도 많은 희귀 동식물이 분포 서식하고 있다 한다.

 

 

장불재에서 백마능선 가는길에..

억새와 철쭉, 그리고 빛고을..

 

 

이곳은 화순방면..

건너편 산에 피어있는 하얀꽃의 정체가 무얼까 몹시도 궁금했던..

 

 

백마능선의 부드러움..

 

해가 머물고 있는쪽 하늘이 멋져서..

 

 

 

 

평등의 무등산..

백마능선 고지에 올라 무등을 마주하고 보니 그 넉넉함을 제대로 알겠다

 

 

내가 좋아하는 연분홍철쭉..

조릿대 숲을 비집고 들어가 만났다.ㅋ

 

 

무등이 안겨준 평온함..

새벽에 눈을 떴을때 강도 8의 두통과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 늑골의 통증이 심해져 오늘 산행을 포기할까 잠시 망설였었는데..

 

 

 

무등산

                                    이성부

 

 

콧대가 높지 않고 키가 크지 않아도  

자존심이 강한 산이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그냥 밋밋하게 뻗어 있는 능선이, 
너무 넉넉한 팔로 광주를 그 품에 안고 있어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느냐.

기쁨에 말이 없고, 
아픔과 노여움에도 쉽게 저를 드러내지 않아, 
길게 돌아누워 등을 돌리기만 하는 산. 
태어나면서 이미 위대한 죽음이었던 산. 
무슨 가슴 큰 역사를 그 안에 담고 있어  
저리도 무겁고 깊게 잠겨 있느냐.

저 산이 입을 열어 말할 날이  
이제 이를 것이고, 
저 산이 몸을 일으켜 나아갈 날이  
이제 또한 가까이 오지 않았느냐. 

 

저 산에는  
항상 어디 한구석 비어 있는 곳이 있어, 
내 서울을 떠나기만 하면  
그곳이 나를 반가이 맞아 줄 것만 같다

 

 

입석대를 바짝 당겨서..

 

 

처음으로 무등산을 찾아간 날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이었습니다.

빙설로 뒤덮여  산행을 포기하고 다만 바라보기만 하려고 했지만 무등산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무등산을 찾아간 것은 5월의 새벽이었습니다. 

칠흑의 어둠속에 무등산은 잠겨있었습니다. 

어두운 산길을 부지런히 오르다 망월동묘역의 참배일정에 쫓겨 입석대 아래에서 내려오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당신은 망월묘역에 참배하는 것이 곧 무등산에 오르는 것이라고 달랬습니다. 

무등산을 무덤산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다시 무등산을 찾은 것은 이번 장마속의 아침입니다. 

다행이 비는 피했지만 이번에는 짙은 안개가 무등산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무등산은 거기 있을 것이었습니다. 

출입금지구역을 가로질러 무등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척에 무등을 묻어두고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해가 뜨고 안개가 걷히면서 무등산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빙설과 칠흑의 저편에서 그리고 안개속에서 걸어나오는 참으로 어려운 산이었습니다. 

 

해발 1,200미터에 가까운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그 높이를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 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것은 능선이었습니다. 

무등의 능선은 아무 욕심없이 하늘에 그은 한가닥 선이었습니다. 

완만하면서도 무덤덤한 능선은 무언의 메시지였습니다. 

당신의 말처럼 무등산은 최고의 산이 아니라 무등의 산, 평등의 산이었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평등하고, 산과 들판이 평등하고, 나무와 바위가 평등하다는 자연의 이치를 무등산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무등산은 하늘을 향하는 산이 아니라 땅을 거두는 산이었습니다. 

자신을 하늘에 높이 솟구쳐 올리는 산이 아니라 기쁨도 아픔도 모두 안으로 간직하는 산이었습니다. 

스스로 대지가 됨으로써 아픈 역사를 그윽히 안고 있는 산이었습니다...

 

               ..신영복 <나무야나무야>  중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맑아지는 날씨..

아쉬움에 중머리재에서 무등의 하늘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하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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