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정여립의 자취를 찾아서..

연이♥ 2013. 6. 3. 17:49

 

진안 천반산 가는길..

구비구비 산을 돌고돌아 가는 길이 깊고도 푸르다.

유월의 신록은 그렇게 깊은 산중에서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었다.

그 옛날엔 길도 없었을진데 어찌 이리 깊은 곳까지 찾아들었으며,

그 깊은 산골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또 어찌 한양에 계신 임금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가.

 

 

★ 정여립(1546~1589)

조선 중기의 문신,사상가

전주 태생으로 율곡 이이의 신임을 받으며 서인 그룹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남다른 박람강기博覽强記와 능변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율곡 사후 동인으로 줄을 바꿨다.

이게 선조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낙향, 진안땅 천반산 죽도에 은거했다.

여기서 정치결사 성격을 갖는 대동계를 조직하고 특유의 카리스마로 추종자들을 규합했다.

정여립은 대동계가 왜적방비 차원의 사병 단체임을 표방했지만 정적들의 표적이 되었다.

충군사상을 뒤흔드는 공화주의적 정치관도 체제에의 도전으로 비쳤다.

결국 역모를 꾀한다는 밀고가 있었고 관군을 피해 은신한 죽도에서 자살 혹은 타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은 1천여 명의 희생자를 낸 기축옥사己丑獄事의 도화선이 되었다.

정여립역모사건의 진실은 오늘날까지 베일에 가려 있다.

역모설과 조작설이 대립한 가운데 사건의 비밀 찾기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실체를 수사할 만한 객관적 사료가 부족하다.

 

 

 

천반산(해발647m)..

산이 그리 높지 않다보니 등산로 초입부터 곧바로 치고 올라간다.

칠부능선쯤에서 마이산 조망 포인트가 살짝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시야가 막힌다.

유월의 숲이 그러했던가?

풀꽃 하나 보이질 않는다.

오르는길이 그.다.지 재미가 없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오르니 정상인 깃대봉이 나온다.

이런, 무슨 정상이 조망도 확보되지 않고 그늘도 없이 친절하지만 그곳엔 어울리지 않는 벤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산행을 할때 정상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곧바로 반대편 죽도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말바위

정여립이 이곳에서 친지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바위로 양쪽이 낭떠러지다

 

장금이 인증샷을 보고 두연군이 지청구를 한다.

척봐도 낭떠러진데 저곳에 장금이를 앉혀놓고 사진을 찍었냐고..ㅎ

 

말바위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 마을 풍경

 

 

이곳은 정여립이 축조했다는 성터로 산정에 돌무더기가 수북하게 남아있다

 

인적없는 고요한 숲길을 장금이와 동행하며 걷는다

비만인 장금이에게 여름산행은 다소 무리라 여기면서도 오랜만에 함께 나선 길이어서 동행을 했다

 

정녕 맘에드는 풍경 하나 만나지 못한채 정여립의 흔적만을 더듬다가 산을 내려가나 싶을 즈음에 이렇게 전망좋은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산을 돌아 흐르는 저 강물처럼 흘러간 옛이야기는 이제 역사가 되고..

 

정여립이 생을 마감했다는 죽도의 풍광이 빼어나다

 

혹자는 그가 자결했다고 보았다.

혹자는 관군이 죽여놓고 자살로 분식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정여립사건을 바라보는 두 갈래 시각인 조작설과 모반설이 충돌하며,

이를 둘러싼 지루하고도 예민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된다.

모반설은 정여립이 충분히 역모를 꾀할 인물이며 증거도 여실하다고 본다.

반면 조작설은 정여립이 정말 봉기를 기획했다면 그토록 무기력하게 달아나서 자살할 까닭이 뭐 있겠는가,

이왕지사 탄로난김에 맞붙어 싸웠을게 아니냐 하는 등등의 방증을 제시한다.

아무튼, 정여립은 죽었고 이를 도화선으로 서인의 집요한 동인 박멸이 잇달았다.

기축옥사라 부르는 이 사건의 와중에서 죽거나 상한 이가 자그마치 1천여 명에 달했다.

조선조 최악의 인명 수난극이었다.

이 사건은 호남에 반역향이라는 낙인이 박히는 계기가 되었다.

일부 사가들이 조선조의 광주사태라 칭하기도 하는 이 괴변의 당시 수사책임자는 송강 정철.

작가 김훈은 소설 <칼의노래>에서 정철의 행각을 묘사해 그 참상을 전하고 있다.

"우의정 정철이 그 피의 국면을 주도했다. 그는 농사짓는 농부처럼 근면히 살육했다.

살육의 트틈이 그는 도가풍의 은일과 고독을 수다스럽게 고백하는 글을 짓기를 좋아했다.

그의 글은 허무했고 요염했다."

 

                                                                 ..박원식 지음 <천년산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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