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대한민국 농악축제

연이♥ 2013. 5. 12. 10:52

 

 

 

 농악은 농민음악을 일컫는데 농악이라는 말은 일제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이래 지금까지 사용되어 오고 있다. 

옛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음악을 '매' 또는 '리'라고 씌어있어 공동체적 놀이를 함축적으로 의미하는 '굿'

이라는 말과 합쳐 농악을 매굿이라고 부르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매굿의 기원은 아득한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방울을 흔들고 북을 치고 춤을 추며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사냥하거나 씨 뿌리고 거두어들일 때

마을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춤을 추고 놀 때에도 꽹과리,장구,징,북을 치며 신명을 돋구어 이를 근거로 매굿의 기원을

제의기원설과 노동놀이 기원설로 설명한다.

 

제의 및 노동놀이에 따라 발전한 매굿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군악적 요소, 불교적 요소 등이 가미되면서 발전하여

널리 민간에 전승되었으며 요즈음은 전문적인 연희집단에 의해서도 발전적으로 계승되고 있다.

 

매굿은 음악요소,무용요소,연희요소가 집중적으로 강화된 종합예술로 우리나라의 전통예술 중에서 규모가 가장크고

포괄적인 집단행위예술이며 가장 원초적인 악기와 가락으로 흥과 신명을 돋구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예술이다. 

 

 

 

 

● 임실필봉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필봉농악은 호남좌도 농악의 대표적인 풍물굿으로 필봉마을 굿의 역사는 300년 정도로 추정하나 오늘날과 같이 수준높은

풍물굿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00년대 좌도지역의 유명한 상쇠 박학삼을 필봉마을로 초대하면서부터이고,

2대 송주호 상쇠를 거쳐 필봉굿의 보유자였던 양순용에 와서 꽃을 피우게된다.

 

허튼가락과 부등상모의 명인이셨던 상쇠 양순용은 필봉리 출신으로 필봉굿의 정리와 쳬계를 마련하였다.

그는 현재 연행되고 있는 풍물굿의 전승과 보급에도 많은 심혈을 기울여 전국에서 찾아오는 젊은이들이게 필봉굿을 전수하는데

일생을 바쳐 활동하다가 1995년에 별세하고 그의 아들 양진성이 그 뒤를 이어 필봉굿을 전승하고 있다.

 

가락적 특징을 보면 채굿가락,호허굿가락,영산굿,도둑잽이굿,수박치기,싸집이굿 등은 필봉굿에서만 볼 수 있다.

앞굿 중심이 강한 다른 지방의 농악에 비해 필봉굿은 뒷굿 중심 또는 놀이 중심에 치중한다.

 

 

 

 

 

 

 

 

 

 

 

 

 

● 강릉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강원지역의 농악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영서지역의 농악과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지역의 농악으로 구분되며

이중 특히 강릉농악에서는 향토적 특징이 날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리적으로 험준한 산악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지역 나름의

고유의 농악형태로 전승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강릉농악의 평성은 농기 위에도 신대를 사용하고 사물과 소고,법고,무고 등 잽이들이

각각 같은 수로 사분화되어 있어 전체 구성 인원은 36~50여명으로 편성된다. 특이한 점은 무동 이외의 잡색이 없다는 점이다.

농경생활을 모의하는 연극적 놀이인 농식풀이가 강릉농악의 대표적인 특색이라 할 수 있다.

 

 

 

 

 

 

 

 

●평택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우리나라의 농악은 크게 웃다리농악(경기,충청지역), 전라좌도농악, 전라우도농악, 영남농악, 영동농악 등으로 나누어진다.  

평택지방은 드넓은 벌판을 배경으로 농업이 발전해 왔으며 자연히 농악도 함께 발달해 왔다. 

경기.충청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전문연희패가 발달해 왔는데 특히 걸립패가 가장 늦게까지 남아 활동하였다.  

전문연희패는 두레패에도 영향을 주어 평택,안성,화성 등의 농악도 더욱 발전하였다. 

 

웃다리 농악은 가락의 종류가 많지 않은 반면 변주가 다양하다.  

또한 가락이 빠르고 힘이 있으며 맺고 끊음이 분명한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  

판굿은 굿패들이 여러 가지 놀이와 진풀이를 순서대로 짜서 갖은 기예를 보여주기 위하여 벌이는 풍물놀이이다.

 

평택농악의 판굿은 진풀이가 다양하고 화려하며 생동감이 넘친다.

당산벌림 대형과 무동놀이가 가장 큰 특징인데 특히 무동놀이에서 보여주는 던질사위,앞뒤곤두,

만경창파돛대사위,동거리와 곡마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평택농악만의 자랑거리다.

 

 

 

 

 

 

 

 

 

 

 

 

 

● 진주삼천포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

 

진주삼천포농악은 서부경남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대표적인 영남형 농악으로 1966년에 농악부문 최초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농악의 편성은 전원이 전립을 쓰고 채상이나 부포를 돌리는 것이 특징이며 판굿에서는 채상모와 부포놀이가 돋보이며 군사놀이의 진법과

소고수들의 무예적 몸짓이 특징적이다.

 

음악적 특징으로는 군악의 영향을 받아 쇠가락이 빠르고 소고수(버꾸잽이)의 앉은버꾸,자반뒤집기 등 상모놀음이 발달하였고,

그 동작은 무예적 몸짓으로 빨리 돌아가는 진법놀이가 많아 매우 활발하고 씩씩한 것이 특징이다.

 

 

 

 

 

 

 

 

 

● 이리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호남우도농악인 이리농악은 김형순선생이 1953년 풍물계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이리농악단'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다른 지역 농악과 다른 점은 상회의 부포놀이와 소고춤의 기법,진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되어 있다는 점이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쓰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주되어 다채롭고 풍류굿,삼채굿에서는 악절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

 

이리농악의 판제는 첫째마당,둘째마당,셋째마당과 뒷굿으로 각기 구분하였으며,

특히 뒷굿으로는 도둑잽이굿,상쇠놀이,설장고놀이,상모놀이,열두발놀이,기놀이 등이 펼쳐진다.

 

 

 

 

 

 

 

바람 한 점 없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의 농악축제장..

관객이라곤 어르신 몇십 여명이 전부였지만 신명나게 한 판 축제마당을 펼친 

우리농악의 전수자들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사진은 공연을 펼친 순서대로 올렸으며, 핸드폰 동영상 편집에 수고해준 두연군에게도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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