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기차를 타고...

연이♥ 2011. 1. 18. 22:39

 

1월...

많이 불안하다.

우연군도 나도...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기차여행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이구동성으로 여행지는 목포로 정해졌다.

그렇게 두 모자는 한마음이 되어 올겨울들어 가장 춥다는 날에 남행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익산을 출발할때만해도 코끝이 매울정도로 추운 날씨에 걸맞게 더할나위 없이 쾌청하던 하늘이 

기차가 남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흐려지더니 마침내 함평에 도착할 즈음엔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답답한 가슴 달랠길 없어 무작정 기차를 타고 떠난 여행...

종착역인 목포에 도착할때까지도 여전히 폭설이 내리고 있다.

 

목포에 대한 상식이라곤 바다가 있고 유달산이 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년사업가로서 왕성한 삶을 살았던 곳,

일제강점기에는 목화를 재배해 본토로 실어 날랐고,

우리나라 국도 1호선이 시작되는 곳 정도...

 

역을 빠져나와 잠시 망설일 틈도 없이 유달산 방향으로 향하는 발걸음...

목포시가지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유달산에 오르고 싶어 오늘의 여행지를 목포로 정했는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기전에 먼저 점심을 먹기로 하고 식당에 들어가니 친절하지 못한 날씨 때문인지 손님 하나 없는 식당은

난방도 하지 않아 썰렁하기 그지없다.

 

눈보라를 구경할 요량으로 창가 자리에 앉아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려 파전과 동동주를 주문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올해 같은 추위는 처음 봤다면서 수도가 얼어 지하에서 물을 받아다 쓰고 있다고 한다.

창밖에는 쉼없이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한산한 식당에는 스무살의 청년과 청년의 어머니가 동동주잔을 부딪친다.

동동주가 몇 잔 들어가자 얼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려 한없이 행복해진다.

 

넉넉해진 마음은 된장찌개와 공기밥 대신 낙지볶음을 추가로 시킨다.

손님이 없다보니 자꾸만 우연군과 내게 말을 걸어오는 주인 아주머니의 육십평생 살아오신 이야기도

창밖의 눈보라와 낚지볶음과 동동주와 한데 어우러져 우리들의 겨울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흐르고...

눈이 잠시 그친 틈에 식당을 나와 유달산을 오른다.

시청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눈을 치우고 있다.

 

 

유달산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고...

 

<목포의 눈물> 가사가 새겨진 '이난영 노래비'가 있고...

 

목포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던 오포도 있다.

 

 

 

 

 

산을 오르면 목포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섬들로 둘러싸인 바다가 보인다.

유달산에 부는 거센 바람은 눈보라를 휘몰아 치다가도 금세 하늘을 열어주기를 반복한다.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버려 귓볼이 얼얼했지만 유달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는 맛은 정말  좋았다.

  

 

 

 

산을 내려올때 까지만해도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만큼 눈보라가 심했는데

역에 도착할 즈음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 뚝 떼고서 파란 하늘을 드러내고 있다.

더욱 놀라운건 종일토록 내린 눈이 대부분 녹아버릴만큼 남쪽나라는 따뜻하더라는 사실이다.

 

여행이란...

떠나기 전에는 설렘이지만,

돌아오는 순간은 피곤함이다.

그래도 여행을 떠남은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기차 창에 기대어 바라보는 낯선 곳의 불빛들은 내 소소하고도 시시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들로 채워져 있는지를 소리없이 일깨워준다.

'산과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파일풍경  (0) 2011.05.11
구례 사성암  (0) 2011.02.22
겨울 내장산  (0) 2011.01.02
주말일기  (0) 2010.10.23
진안 운장산  (0) 2010.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