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여행스케치

연이♥ 2010. 7. 2. 11:57

★ 여행일정: 2010년 6월 26일 ~ 6월 30일(4박 5일)                  북경시내와 만리장성,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있는 백두산과 두만강

 

★ 첫째날 ; 출발전의 날씨는 아랫녘에 많은 비가 내릴거라는 일기예보에 걸맞게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짐.

 

                오전 9시경 북경공항에 도착하여 북경 시내 '798 예술거리' 관람 후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 구경후 점심식사.                오후에는 명품관이 즐비한 백화점과 주변에 있는 음식점 골목을 돌아다녔는데 메모없이 머릿속에 바로바로 입력을 했더니                 아니 벌써! 거리 이름을 까먹었다. 

 

                북경의 날씨는 듣던대로 찜통+후텁지근+스모그 짙게 깔림, 이었다. 

 

 

 

 

 

 

 

 

●  798 예술의 거리    

원래는 공장지대였던 곳이 예술의 거리로 탈바꿈을 했다는데 나처럼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눈이 있으되 볼줄을 모르겠으니 예술과 낙서의 차이만큼이나 간극이 넓기만 하여라. 

 

     예술의 거리에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선남선녀들의 웨딩촬영 모습이 내겐 더 예술적으로 보였다.^^

 

 

 

 

 

 

 

● 한꺼번에 2백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전 세계 광장중에서 가장 넓다는 천안문 광장.   광장에 모여든 수많은 인파들을 살짝 따돌리고 기념사진 한 장 찍어주심.   (좀 꺼벙하지만 다른 사진이 없으므로 그냥 올림)  

 

  

 

 

 

● 자금성  

 

찜통 더위도 무색할만큼 많은 관광객들로 가득 들어찼다.    그저 인파에 휩쓸리 듯 걸어다니며 대국의 면모를 느껴본다.    자금성을 찾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남편의 패션은 단연 돋보인다.    남편은 사진 찍을때 웃는 법이 없다. (스무개가 넘는 모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필 내 모자를 욕심내기에 쓰라고 했다.)

 

 

 

★ 둘째날

  

; 전날밤 늦게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서 연길로 이동,  연길에 도착할 즈음에 우연군에게서 대한민국:우루과이의 16강전                  경기결과를 알리는 문자가 왔다.                 " 2:1 우루과이 승, 그래도 잘했음..." 이라는...ㅠ

 

               새벽 6시에 연길에 있는 호텔을 출발해서 백두산 가는 길,                우리 옛 조상들의 땅이었던 만주벌판을 4시간 넘게 달려간다.               가도가도 끝없는 산과 들과 강을 건너건너 그렇게 벅찬 가슴을 안고 백두산 가는길,               연길을 출발할때는 좋았던 날씨가 백두산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흐림이더니 급기야는 백두산에 들면서부터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함께간 일행(남편의 직장 동료 부부동반 모임)중에서 분위기 메이커인 수찬씨의 한 마디,               " 어젯밤에 목욕재개 하고 잠만 자랬더니 누가 말 안들었어?  부정 탔잖아~~~"

 

 

 

 

 

 

● 백두산 천지   

한 치 앞도 안보일만큼 거세게 비가 내렸지만 그래도 백두산에는 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천지에 올라보지만 자욱한 안개때문에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다.  아쉬움에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는데    그 정성이 갸륵해서인지 잠시(아주 잠깐) 안개가 걷히고 천지의 너른 품을 보여준다.    백두산 산신님 고맙습니다~!

 

    100년에 한 번꼴로 화산이 폭발한다는 백두산에 다시금 폭발 조짐이 보이다보니 걸어서 오르는 코스는 모두 폐쇄된 상태이다.

 

    중국정부에서 비록 관광을 허용하고는 있지만 백두산을 오염시키지 않으려고 나름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다.    관광용 지프 차량도 모두 무공해 차량이고 벌채나 채집 등을 엄격하게 단속 한다고 한다.       백두산의 야생화, 많이 그리웠는데 비내리는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야만 했다.    지금 백두산에는, 연노랑의 작은 꽃, 양귀비가 지천에 피어있다.

 

 

 

 

●장백폭포  

예전에는 이곳 폭포를 경유해 천지까지 등산을 했었다는데 지금은 등산로가 폐쇄된 상태다.   비내린후의 폭포수 떨어지는 광경은 언제봐도 가슴이 뻥 뚫리는 장관이지만 비바람치는 천지에서 단 몇 장의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렌즈에 물이 스며들어 안타깝게도 이후의 사진들은 모두 흐릿해서 사진을 보면 아직도 속이 상한다.   폭포를 좋아하는 나는 남들보다 오랜 시간을 폭포 앞에 머물며 인증샷도 여러장 남겼지만 모두 Delete~

 

   장백폭포 아래로는 유황온천이 솟아오르고 있어 비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쫄딱 젖어 떨고 있는 몸을 위해 온천욕을 하기로 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노천탕에서는 짖굳은 남정네들이 까치발을 딛고서 여탕을 흘끔거리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으로 쌓인 피로를    날려보냈다.  첫 날은 새벽 두 시에 집을 떠나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연길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지만 둘째날은 초저녁에 백두산에    있는 호텔에 입성,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 셋째날 : 전날에 그토록 내리던 비구름은 밤사이 모두 걷히고 이른 아침, 백두산의 하늘이 약오르게 파랗다.                전날 백두산에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만났던 한국 관광객들을 아침에 호텔 식당에서 다시 만났는데 어제 보지 못한                백두산 천지를 오다시 보러간다며 다른 일정을 취소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에 비해 아침 하늘이 너무도 맑았다.                하지만 현지 가이드들은 백두산 천지의 날씨는 올라가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루에도 백 번 바뀌는게 백두산 천지의 일기라고 한다.

 

                어쨌거나 우리 일행은 비록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천지를 보았기에 미련 툭툭 털어내고서 백두산을 빠져나와                 전날과 마찬가지로 버스로 네 시간을 달려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는 용정 대성중학교(구, 용정중학교)로 이동을 했다.

 

                연변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대학 가는 것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게 더 어렵다고 한다.  마침 우리가 전날 아침에 연길을                 떠날때가 삼일간 치르는 고등학교 입학 시험 첫날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대학 시험을 치르는 그것 못지 않게 교통을 통제하는                 등 도시 전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하루만에 다시 용정으로 돌아왔을때는 둘째날 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대성중학교는 조선족 학교로서 학생들은 새로 지은 교사에서 수업을 하고 구, 용정중학교 건물에는 일제시대 만주에서 활동했던                우국지사들의 자료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성중학교는 한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많은 한국인들이 후원을 해주고 있다 한다.                       

 

 

 

 

● 만주벌판에 부는 바람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그곳,    그 먼 옛날에 대륙을 호령하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양 달리는 버스창에 기대어 귀기울여 보기도 하고, 만주벌판의 바람이 안겨준 벅찬 감동은 윤도현 밴드의 노래 '광야에서'를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 조선족   

연변에 거주하는 지금의 2.30대는 이민 3세대로서 이들은 대부분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고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데다     조선족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우리의 말과 글을 잘 알고 있지만 이들 다음 세대부터가 문제라고 한다.  어차피 중국에서 살아야      한다면 중국말을 할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중국 학교에 입학을 해야하고, 중국 학교에 다니게 되면 오로지 중국말만을 쓰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배운 한국말도 잊어버리게 되고, 집에서는 부모와 말이 잘 통하지 않다보니 대화가 단절되어 버린다고 한다.      현재 연변 지역은 '조선족자치주'로서 중국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은 곳이어서 건물 외관에 설치하는 간판을 비롯해 모든 알림 문구     들은 한글을 앞에 쓰고 뒤에 한자를 병행해서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남한 면적의 반이나 되는 드넓은 영토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우리나라의 얼과 말과 글을 지켜내고 있는 조선족들에게 새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도문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조선족이 사는 집에 잠시 들렀다.     방과 거실, 부엌이 하나로 된 실내 한켠에 가마솥이 걸려 있었는데 겨울에 난방을 겸한 장치라고 한다.     좁은 집이었지만 중국식이 아닌 조선식을 표방한 실내는 아주 깔끔했다. 역시 조선인이다.     마당에 있는 텃밭에는 지하 김치 저장고가 있다.  조선족 김치냉장고인 셈이다.

 

     

 

 

 

● 도문  

북한과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 국경도시다.   전날 내린 비로 유행가 가사처럼 두만강 푸른물이 아닌 탁류였지만 두만강에 부는 바람이 정말 상쾌했다.   바람에 묻어온 알 수 없는 은은한 향기가 지금도 코끝에서 느껴질만큼 정말 공기가 맑고 신선했다.   강 건너 저 아름다운 산하가 바로 우리는 가지 못하는 땅, 북녘 동포들이 사는 땅이다.

 

 

 

 

 

 

 

 

●  연길    

연길은 '길림성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성도로서 인구는 50만이고 한족과 조선족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일행중에 10년전에 백두산을 다녀온 분이 있는데 그때와 지금의 연길은 너무 많이 달라져서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실감난다고 한다. 어쨌거나 조선족들이 이곳 연길을 비롯 중국 각지에서,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 본토사람이나 고국사람들에게 기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중국여행을 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 백두산,    그리고 우리의 동포들이 살고 있는 연변과 만주벌판에 많은 아쉬움과 어느새 밀려드는 그리움을 남겨두고서 늦은 오후에는     다시 북경행 비행기에 올랐다. 

 

 

 

 

★  넷째날; 아침에 일어나 창문 커튼을 젖히고 바라본 북경시내는 온통 뿌옇기만 하다.                아, 이곳 사람들은 하늘에서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을 못보고 산다는 말인가?

 

              

 

 

 

  

오전에는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을 둘러보고 오후에는 2008,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북경의 뿌옇기만한 하늘은 나로 하여금 자꾸만 가방속에 들어있는 카메라 꺼내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힘들게 꺼낸 카메라는   베이징 올림픽때 지었다는 7성급 호텔과 올림픽 주경기장 사진 딸랑 두 장만을 찍고서 도로 가방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1원짜리 얼음과자 하나씩 물고서 올림픽 경기장을 둘러본 후에는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해 장이모우 감독이 만들었다는 시극    '금면왕조' 공연을 관람했다.  가이드가 정말 괜찮은 공연이라고, 공연을 본 사람들은 모두 북경에서 가장 인상적인게 '금면왕조'     였다고 말할 정도로 좋다면서 어찌나 강추하던지 1인당 거금 오만원씩을 주고 보았다. 공연을 본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별로다.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를 여러 편 본터라 그의 스케일과 색채는 이미 익숙한데다 예전에 항주에서 본 송성가무쇼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금면왕조' 공연 관람후에는 곧바로 장소를 옮겨 서커스단 공연을 보았는데 내게는 오히려 서커스가 훨씬 감동이었다.     연이형제 또래 정도로 보이는 젊은친구들이 그만큼의 기량을 선보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냈을까 생각하니      짠해진다. 관객들 모두 큰 박수로 그들의 노고에 격려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넷째날은 북경의 후텁지근한 날씨만큼이나 늘어지는 관광일정이어서 완전 하루 공치는가 싶었는데       그나마 마지막 서커스 공연이 있어 본전은 뽑은거 같다.

 

 

 

★ 다섯째날; 전날보다 시계가 더 좁아진 북경의 하늘, 비록 알아 듣지는 못하지만 일기예보를 보니 비예보가 있다.                  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종일 잔뜩 흐림이다가 오후에는 햇빛은 없어도 하늘에 동그란 해가 떠 있다.     

 

● 만리장성   

북경관광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자금성과 만리장성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보면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실망을 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6천킬로미터가 넘는 성곽을 헬기를 타고 둘러보지 않고서야 어찌 다 볼 수 있겠는가!

 

    가이드 말에 의하면 만리장성은 2500년전에 진시황이 처음 쌓을때는 흙으로 쌓았는데 큰 비가 내리면 무너져서 다시 쌓기를 반복    하다가 지금의 돌로된 성곽은 명나라때에 쌓은 것이라고 한다.  만리장성을 쌓는데 들어간 돌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성을     쌓는 노역에 동원되어 죽어 나갔다고 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게 기원전 221년인데 만리장성을 2천    5백 년 전에 쌓았다는건 좀 심하게 거슬러 올라갔다. 그 무렵이면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 아니던가.

 

     아무래도 만리장성은 세계적 관광명소이다보니 각양각색의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개가 자욱해서 많이 올라봐도 제대로 보일리 만무해서 조금 오르다가 이따금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람 구경을     하기로 했다. 히잡을 쓴 아랍 처녀들도 더러 보이고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기간이어서인지

 

각국의 축구 유니폼을 입은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띈다.

 

    이란에서 왔다는 키가 큰 아저씨와는 간단한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물론 내 영어실력이 워낙 짧아서 단어 위주로 나눈     대화였지만. 먼저 이란 아저씨가 날더러 차이니즈냐고 묻기에(영어를 제법 하는분) 코리안이라고 대답하고 베이징과 서울중 어디가     더 아름답냐고 묻기에 당근 서울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서울에는 테헤란로가 있다고 했더니 테헤란에도 서울로가 있다고     한다. 옆에 있는 브라질 청년에게는 브라질 축구 짱이라고 했더니 엄청 좋아라한다.

 

   

  ● 집으로  

여행중에 남편이 배탈설사에 감기까지 겹쳐 고생을 많이 했다. 북경에서의 마지막 이틀은 거의 차안에서 누워지내다시피 했다.   몸아픈건 본인만 괴로울뿐 다른 사람은 그 고통을 잘 헤아리지 못하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내나라 내집도 아닌 낯선 땅에서 몸이    아프다는건 내몸이 아프지 않아도 얼마나 괴롭고 힘들지 충분히 공감하기에 덩달아 나까지 컨디션이 좋질 않아 여행이 지루하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행기가 세 시간 가까이 딜레이 되었지만 중국항공사는 사과의 말 한 마디 하지 않은채 승객들은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한다. 그나마 저녁 도시락을 배급해서 배고픔은 면할 수 있었다. 두 수험생을 집에 두고 온터라 여행내내 편치 않았던    마음은 인천행 비행기에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해진다.  새벽 세시 반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해보니 그때까지 우연군과 장금이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영문을 모르고 그동안 매일밤 현관 문앞에서 우리를 기다렸다는 장금이의 숨이 멎을것처럼 열렬한 환영은    4박 5일간의 여행을 하면서 순간순간 느끼던 감동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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