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봄, 지리산

연이♥ 2009. 4. 30. 14:59

밤새 꿈을 꾼것 같기도 하고,

밤새 잠못들고 뒤척인것 같기도 하고...

 

새벽 5시 20분,

 알람소리에 일어나 동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려본다.

 

'잠을 푹 못잤으면 어떠리,

 새벽 하늘이 저리도 높은것을...'

 

한 주동안 감기와 두통에 발목이 잡혀 지내면서

자꾸만 바닥이 드러나는듯한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창자 저 밑바닥에 있는 기까지 모조리 내안에서 빠져나가는 느낌,

실로 예전에 미처 느껴보지 못한 증상이다.

 

무엇으로 이 슬프도록 허전한 느낌을 채워야할까...

식욕이라도 당기면 좋으련만 마지못해 끼니를 떼울 지경이고

도무지 먹고싶은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래도 지리산에 다녀와야겠어...'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데 목소리에 물기가 배어난걸 느꼈나보다.

두 말없이 그러자고 한다.

 

그렇게...

지리산엘 다녀왔다.

 

 

 

 

봄이면 구례-하동간 19번 국도변을 온통 보랏빛으로 수놓는 꽃 자운영,

이제 얼마 안있으면 농부들은 모내기를 하기 위해 보랏빛 논을 갈아엎을텐데

아직 꽃들은 그 고운 빛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피아골 연곡사,

2년전 가을, 가족산행을 할때 하산길에 들르고 싶었지만

세 남자의 반대에 부딪쳐 그냥 지나쳐야 했던곳,

와본지가 5년이 넘은것 같다.

 

 

 

 

누가 모란꽃을 향기없는 꽃이라 했던가!

그 깊고 그윽한 향기를 어쩌라고...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있는 현각선사탑비

 

 

연곡사 북부도

 

연곡사 동부도

 

 

 연곡사 동부도비 

 

연초록 신록이 눈부시고 아침햇살 찬란한 연곡사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계획한 산행 때문에 서두르지 않을수 없기에 사진으로 두고두고 보기로하고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는 세 기의 부도를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아본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피아골-노고단에 이르는 코스를

산행하려면 총 11km에 5시간 20분이 소요된다고 나와 있다.

 

산행을 안하는 남편은 직전마을에 나를 내려주고 성삼재 주차장으로 옮겨가

기다리기로 했는데 야근을 들어가는 남편 출근 시간에 맞추려면 어떻게든

산행 시간을 네 시간 정도로 단축시켜야 했다.

 

물론 혼자 하는 산행인만큼 시간을 단축시킬수야 있겠지만

문제는 피아골-노고단 코스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

아직 한 번도 가본적 없는 코스를 섣불리 택해놓고 내멋대로

소요 시간을 줄여도 될지는 산을 올라봐야 알 수 있다는 것!

 

조금 무모하다 싶으면서도 일단은 가볍게 출발한다.

아침도 못먹고 나온 남편에게 내심 많이 미안해진다.

 

"여보, 시간 넉넉하니까 직전마을에서 아침부터 먹고 천천히 넘어가..."

"내걱정 말고 조심해라!"

 

 

 

 

 

남편과 헤어져 피아골 계곡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눈에띄지 않는다.

피아골 대피소에 거의 다 가도록 단 한 사람을 만날수가 없으니 도대체 뭔일인가 싶다가도 피아골이 원래

단풍으로 유명한데다 워낙 깊이 들어와야 하다보니 봄엔 사람들이 많이 찾지않는가보다 생각하며 걷는다.

 

요사이 봄가뭄이 심했는데도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역시 지리산이다.

 

 

  

 

피아골 대피소에 도착...

올라오면서 회사에서 온듯한 단체산행팀 한 팀을 제외하면 단 한 명의 등산객도

만나지를 못했는데 대피소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던것과 달리

대피소에 도착했어도 사람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뭔일이래?'

 

약수를 한 컵 마시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등산로 입구에 녹슨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이건 또 뭔일이래...'

 

대피소 안에 들어가 등산로가 어디냐고 물으니

내일까지 국립공원 입산금지랜다.

 

헐~~~~~~~~~~~~~~~~~~

그토록 산엘 다녔으면서도 해마다 봄이면 산불 때문에 국립공원 입산이 금지되는걸 생각 못했다니!

 

" 아저씨, 그럼 어떡해요?"
"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다시 내려가야지."

" 차가 성삼재로 넘어가 버렸는데 어떡해요?"

" 전화해서 다시 오라고 해야지 절대로 들어가면 안됩니다.  벌금 50만원입니다."

" 아저씨~~~ 한 번만 봐주시면 안될까요?  전 담배도 안피우고 인화성 물질 아무것도 없어요."

" 아, 안돼요.  법이 그런걸 어쩝니까?  이틀후에 오세요."

 

흰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산장 주인은 야멸차게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고

홀로 남겨진 나는 잠시 갈등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그래도 가는거야~'

 

결국...

살금살금 발소리 죽여가며 막아놓은 쇠창살문 아래 개구멍으로

납작 엎드려 불법을 감행했다.

 

 

 

 

피아골 대피소에서 피아골 삼거리에 이르는 2km 구간,

계곡의 물소리도 끊기고 들리는건 오로지 새소리뿐,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면서 몸은 점점 힘들어지는데 맘편히 쉬어갈수도 없다.

 

'피아골 삼거리까지만 가면 노고단까지 어느정도 걸릴지 대충 감이 올거야...'

 

무념무상...

오로지 노고단만을 생각하며 오른다.

 

뭔가를 비워보겠다는 주문을 해본적이 별로 없는데

요즘은 자꾸 비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고요한 산,

장엄한 지리산이 이토록 고요할 줄이야!

 

무섬증이 들만큼 고요한 지리산에서 잠시 반달가슴곰 생각을 했다.

'만약 곰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하지?

 나무위로 올라가야 하나?

 아까 피아골에 대나무 지팡이 있었는데 그거라도 하나 가져올걸 그랬나?'

 

잠시 곰생각에 괜한 걱정을 만들었는데 정말로 반달가슴곰 사진이 하나 턱 걸려있다.

그 이름 화엄이,

 

'뭐야 이거...곰을 만나게되면 신고하라고?  곰을 만났을때 어떻게 대처하라고

 알켜줘야지 신고하라고? 곰한테 잡아 먹히면 어쩌라고?'

 

 

 

 

피아골 삼거리,

휴, 살았다.

 

 

 

 

 

와~~~

너무 좋다~~~

큰 소리로 야호 한 번 외치고 싶지만 꾸욱 참기로 하고~~~

눈물이 날만큼 벅차오르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혼자 보기엔 너무나 아까운 구비구비 지리산 자락을

한참을 바라본다. 

 

 

 

 

산 위에는 이제서야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비록 아직 꽃이 제대로 피지않아서 아쉽긴 하지만 시원스런

조망이 펼쳐진 곳에서 나홀로 진달래 꽃무리를 만나는 행운을~~~

 

  

 

 

 

피아골 계곡이 꽤 많이 멀어졌다.

바로 이 맛이지~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는 맛~

 

'고향의 봄' 노래에 나오는 아기진달래가 이렇게 생겼나보다.

지금까지 보았던 진달래보다 꽃잎이 작다.

 

 

 

 

 

동에서 서로 이어지는 지리산 봉우리들을 세면서

우연이가 대학생이 되거든 꼭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25.5km 구간

종주산행을 하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산행이어서

준비해간 김밥을 먹지 않고서도 가볍게 걸을수 있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곳에 드디어 노고단이 보이고 반가움이 밀려드는가 싶더니

이내 걱정으로 돌아선다.

 

분명 노고단 고갯길에서도 산행을 통제할터 그곳에서 과연 곱게 통과시켜줄지...

걱정거리가 생겼을땐 좀 더 대범하게 부딪치자!

까짓거 과태료 50만원 내라면 내지 뭐!!!

 

아니나다를까,

고갯길에서 어떻게든 눈에 안띄게 울타리를 통과하려 했지만 결국 들키고 말았다.

 

" 지금 어디서 오시는 겁니까?"

" 아녜요, 저 방금 넘었다가 그냥 나오는 거예요."

" 아닌데...넘어가시는거 못봤는데요? 그리고 이거 넘어가도 안되는 거예요."

" 그러니까 다시 넘어 왔잖아요."

"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어디서부터 오셨어요?"

" 아니라니깐요.  저 정말로 방금 넘어갔다 다시 왔어요."

 

ㅎㅎㅎ

과태료 50만원까지 각오했던 30분전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노고단 고갯길에오니 많은 사람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완전 개방된

노고단을 오르기위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많아진 인파를 보면서 

몇 시간동안 지리산에 있었지만 마치 잠시 동안 나홀로 딴 세상에 있다온 느낌이다.

 

 

 

화엄사 계곡,

하나의 산이 같은 계절에 세 가지 모습을 하고 있다.

멀리 섬진강도 길이되어 흐르고...

 

 

성삼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뱀사골계곡 주변이 너무나 아름다워

달리는 차안에서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하고,

많이 피곤했지만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졸지도 못했다.

 

 

오늘,

나홀로 지리산을 독차지하고 왔다. 

    2007.4.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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