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반야봉 산행스케치

연이♥ 2008. 9. 29. 15:04

 

 

중간고사 시험이 끝난 두연이와 함께 지리산엘 다녀왔다.

까다롭고 고집세고 게으르기까지한 두연이와 산행을 해본게 얼마만이던가.

지난해 시월, 계룡산이 붉게 타오르던날의 산행 이후 처음이니 꼬박 1년만인가 보다. 

 

전날의 예보와는 다르게 아침하늘이 맑지가 않다.

그나마 다행인건 흐린 날씨지만 먼 산까지 보일 정도로 시계가 트여 있다.

도시락을 준비하고, 집에 남아있는 우연 부자의 저녁으로 카레를 볶아놓고 집을 나섰다.

 

익산발 여수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지리산으로 간다.

기차안에서 바라보는 들판의 가을 풍경이 황금색을 만들 준비를 하느라 연둣빛으로 펼쳐져 있다.

저 들판에 찬란한 아침햇살이 비쳤더라면 금상첨화일텐데 하는 아쉬움은 두연이와의 수다로 달랜다.

 

모처럼 기차를 타고 산행을 떠나는 두연이도 기분이 좋아보여 다행이다.

전주에서 남원까지는 산이 많다보니 터널이 계속계속 이어진다.

터널 공포증이 있는 내겐 참으로 지루한 구간이기에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왜 아니겠는가, 지리산이 날 기다리고 있는데!

 

두연이와 나는 오늘, 지리산에서도 그 기가 가장 쎄다는 반야봉을 만나러 간다.

 

 

 성삼재에서

 

 

섬진강변에 있는 구례구역은 주변 풍광은 아름답지만 구례 읍내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까지 가는데 5천원이 넘는 요금이 나온다. 터미널에서 다시 성삼재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40분 가량을 기다려야 했다.  사전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나마 기차 시간과 터미널에서

성삼재 가는 버스를 타는데 가장 적게 기다리는 시간으로 맞춘게 그정도이다.

 

구례터미널에서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비는 3,200원으로 학생도 할인이 되지 않는다.

농촌 인구가 지속적인 감소추세 이다보니 도시의 시내버스 요금과는 비교가 안되는게 농어촌버스 요금이다.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일이기에 결코 3,200원이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천은사 입구에서 버스를 세워놓고 직접 승차해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데는 적잖은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 버스는 곧장 성삼재로 가는데도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하나요?"

"반경 8km 이내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입장권을 끊으셔야 합니다."

 

엄연히 천은사 일주문은 지리산 일주도로에서 비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관람료를 징수 한다는건 억지라는 생각이 든다.

천은사를 그냥 지나치는 많은 이들의 볼멘소리는 분명 국립공원 제 1호 지리산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음을 천은사에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내가 조금 덜 억울했던 건 학생은 요금을 징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삼재 오르는 길,

구불구불 아슬아슬한 그 길 모퉁이 마다엔 보랏빛의 쑥부쟁이, 희디 흰 구절초가 지천에 피어 방긋방긋 웃고 있다.

반야봉 가는길엔 또 얼마나 많은 구절초가 피어있을까 생각하니 절로 입이 벙글어지는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일기예보에

꽃처럼 활짝 펴지던 얼굴위로 금세 걱정이 덧씌워진다. 

 

'남부지방엔 빗방울이 떨어지겠고 중부지방은 점차로 흐려지겠습니다.'

 

"쳇, 무슨 일기예보가 저러냐?  비가 내리면 내리는거지 빗방울이 떨어지겠고가 뭐냐?"

"엄마는 저렇게 말하는거 처음 들어요?  전 예전에도 가끔 들어봤는데요?"

 

아니나다를까,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니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기예보였다.

 

설마 예보에도 없던 비가오랴 싶어서 우비도 우산도 준비를 안한터라 급한대로 휴게실에 들러

우비 두 벌을 사고 우동 국물을 먹고 싶다는 두연이에게 우동 한 그릇 사 먹인뒤 산행을 시작했다.(AM11:10)

 

   

노고단 고갯길에서

 

 

성삼재에서 노고단 가는길,

참으로 지루하고 지루하고 또 지루한 길이다.

지금까지 그곳을 오르내린 것만 해도 열댓 번은 될 터이지만 여전히 지루하고 지루한 길이다.

왜 지루한지는 굳이 말해 무엇하랴, 그저 지루하다 생각되는 것을!

 

두연이와 함께 합창하 듯 '지루해지루해' 를 외치다보니 어느 덧 노고단 고갯길에 이르렀다.

때마침 점심무렵이어서 그곳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노고단을 탐방 하려면 올해 초 까지만 해도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데다 하루 네 차례

지정된 시간에만 가능했는데 지금은 한시적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면 개방 되고 있었다. 

반야봉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기에 시간을 내기가 쉽진 않지만 노고단에 가보고 싶은 욕구를 누르는게 더 어렵다.

 

"두연아, 우리 노고단에 잠시 들렀다 가면 안될까?"

"반야봉인지 노고단인지 하나만 택하세요.  두 곳 모두는 절대 안돼욧!"

"에이, 그러지말고 한 번 봐주라."

"노고단에 들렀다 바로 내려가든지, 반야봉을 가든지 알아서 하세요."

"그래 좋다.  반야봉으로 출발이다!"

 

  

 구절초 그 고운 자태에 반했을까?  하늘도 잠시 구름을 걷어내준다.

 

   

 천왕봉의 연인 반야봉이 지척에 보이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임걸령,

'반야봉이나 천왕봉 가려거든 이리가시오'

'이리가시오 소나무'와 함께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두연이 녀석,

반달곰 그림을 보고 장금이를 닮았다고 하지를 않나,

다람쥐가 지나가도 '장금이다' 라고 소리를 치지 않나,

방금 장금이 울음소리가 들렸다고도 하고, 어디서 장금이 오줌 냄새가 난다고도 하고,

예전같으면 산행 도중 주로 게임얘기가 대부분 이었는데 이번 지리산에서는 온통 장금이장금이장금이~~~

 

 

 

 

드디어 반야봉에 도착했다.

두연이와 함께 반야봉에 오른걸 환영이라도 하 듯 한 무리의 까마귀가 힘찬 비행을 한다.

가까이서 보면 까마귀의 날개짓이 독수리의 그것 못지 않다.

높은 산에서 듣는 까마귀 울음소리는 지리산 오케스트라인양 장중하기까지 하다.

 

 

 

 

버스안에서 비웃었던 일기예보대로 남부지방에 있는 지리산에는 빗방울만 몇 방울 떨어지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반야봉까지 가는 동안에 점차로 맑아져서 끝내는 파란 하늘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워낙 높은 자리에 계셔서 늘 운무에 싸여 있는 지리산 천왕봉,

지난해 이맘때 우연이와의 우중 산행에서 천왕봉을 볼 수 없었음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잡힐 듯이 가까이에

다가온 천왕봉을 만나는 행운이 따라 주었다.

 

처음 산행을 계획할때는 반야봉에서 뱀사골 계곡으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하산길에 두연이에게 '천년송'의 바람소리를 듣게 해주고 싶었지만(두연이도 무척 기대를 했는데) 

뱀사골 가는 길을 놓치는 바람에 도로 성삼재로 나오고 말았다.(PM 6:00)

 

마침 성삼재에는 빈 택시로 돌아가야 하는 택시들이 더러 있어서 가격을 흥정한 끝에 15,000원에 구례구역까지 가기로

했다.  15,000원이면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이용했을때와 거의 차이가 없는 가격인데다 시간상으로는 한 시간 가량을

벌 수 있기에 택시기사는 물론 우리에게도 아주 흡족한 가격이었다.

 

단, 운전실력이 노련한 젊은 택시기사가 구불구불 고갯길을 어찌나 빠르게 내려왔던지 두연이가 그만 멀미를 하고 말았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1분후에 출발하는 상행선 무궁화호 열차가 있었지만 두연이가 멀미로 얼굴이 핼쓱한데다 좌석표도 없다

기에 1시간 후에 있는 새마을호를 타고 가기로 하고(그마저도 이산가족이 되어서) 역 앞에 있는 식당에서 섬진강 재첩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식당 이름은 기억을 못하지만 창밖으로 섬진강이 흐르는 그곳 식당에서 재첩도 듬뿍 들어가고 부추와 매운 고추를 넣은

뜨거운 '섬진강 재첩국물' 한 그릇에 두연이의 멀미가 싹 가셨다는 뒷 얘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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