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어느봄날에...

연이♥ 2008. 4. 20. 20:17

 

 

 

 

 

 

꽃그늘 아래 차 세워두고서,

법당에 들어가 108배를 올리는 마누라 기다리던 남편이 살랑거리는 꽃바람에 그만 잠이들고 말았다.

입까지 벌리고서 곤하게 잠든 남편을 차마 깨우지 못하고 호젓해서 사계절 어느때라도 홀로 걷고 싶은 심곡사 가는 길을 걸어 나왔다.

  

 

 

 

미륵산 심곡사 가는길엔 봄이면 두 차례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지난해 봄, 황사가 심하던날에 찾았을때도 한 차례 벚꽃이 지고 토실토실 분홍겹벚꽃이 피었더니만

이번에도 겹꽃이 피어 진달래 진 미륵산에 온통 분홍물을 들이고 있었다.

 

 

 

 

 

 

 

 

 

애기똥풀이 하는 말

                                                    정일근

 

 

내 이름 너희들의 방언으로

애기똥풀이라 부르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내 몸 꺾어 노란 피 내보이며

노란 애기똥을 닮았지, 증명하려고는 마

너희들이 명명한 가벼운 이름, 더 가벼운 손짓에

나는 상처받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어

너희들 속에 생명이 있다면

내 속에도 뜨거움이 있고

너희들이 이 땅에 존재한다면

나도 이 땅에 뿌리내리고 있어

이제 우리 서로 사랑하기로 해

내 너희들에게 착한 자연이 되듯이

너희들도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줘

너희들의 방언으로 내 이름 부르기 전에

이제는 내 방언에 귀 기울여줘

내 얼마나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로

너희들의 이름 부르는지 아니

귀 기울여줘, 내가 부르는 너희들의 이름을

친구라고 부르는 너희들의 이름을

 

 

 

 

 

하늘을 찌를듯이 키가 큰 벚나무에 어느새 돋아난 초록의 잎새는 

바람이랑 햇살이랑 어울려 그림자 놀이를 하건만 굵은 팔뚝에 찬 꽃시계는 아직도 쌩쌩하다.

참 예쁘기도 하지, 나도 저런 꽃시계 하나 있었으면...

 

 

 

 

숲길을 빠져나와 내리쬐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려는 찰나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한 시간 넘도록 잔걸보니 꽃그늘 아래서 든 잠이 꿀맛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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