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영화

별로 떠난 왕자

연이♥ 2008. 4. 2. 16:28

 

 

 

 

1920년, 스트라스부르 제2전투기 연대 활주로,

교관이 갓 뽑혀 들어온 조종사 후보생들을 모아 놓고 낡은 연습기의 계기반을 가리키며 명칭과 기능을 일일이 설명한다.

그러고는 후보생들을 이끌고 강의실로 들어간다. 

 

후보생 하나가 강의실로 몰려 들어가는 후보생 대열에서 가만히 이탈하여 연습기를 맴돈다. 

그는 강의실 쪽을 힐끔거리고 있다가 가만히 조종석으로 숨어들어 조종간을 잡는다. 

연습기는 활주로를 미끄러지다 둥실 하늘로 떠오른다. 

강의실에서 교관들과 후보생들이 우루루 몰려 나와 연습기를 올려다 본다.

교관들은 욕지거리를 퍼붓고 후보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휘파람을 불어댄다.

 

그는 연습기를 이륙시키고 싶었을 뿐 착륙시키는 법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동안 하늘을 날던 그는 연습기를 반쯤 부숴 먹은 다음에야 활주로에다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연착과는 거리가 먼 무모한 동체 착륙이다.

헌병 손에 영창으로 끌려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면서 교관 하나가 중얼거린다.

"천상 하늘에서 죽을 녀석이야."

 

앞뒤 돌아보지 않고 연습기를 하늘로 몰고 올라간 후보생이 바로 생떽쥐베리다.

그가 조종사 면허증을 딴 것은 그로부터 2년 뒤 영창살이를 끝내고 카사블랑카 파견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아름답게 슬픈 이야기 <어린왕자>는,

불시착과 추락 사고로 점철되는 항공기 조종사의 척박한 삶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다.

<어린왕자>는 그의 이름을 별의 높이까지 드높인 '한 어른의 어린 시절'에 바친 이야기다.

 

 

이윤기 산문집 <무지개와 프리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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