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영화

양반전/박지원

연이♥ 2008. 3. 27. 16:28

 

 

 임진,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조선시대 양반은 그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고 이후 상공업의 발달로 사농공상의 엄격한 신분사회가 붕괴되면서 천민이 경제력을 축적하여 돈으로 신분상승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이와 반대로 상층의 사대부들 가운데는 정치,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그 신분까지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풍자란 근본적으로 현상과 본질의 괴리에서 야기되는 것으로써 연암이 살았던 18세기 후반의 조선사회는 정치,경제,사회면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양반전>은 『연암집燕巖集』 「방경각외전」에 실린 일곱 편의 전傳 가운데 하나로 무능하고 위선적인 양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 모습을 아주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강원도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았다.  그는 성품이 어질고 글 읽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온 고을에 인품이 높기로 소문이 나서 새로 군수가 부임해 올 때면 으레 그 집에 찾아가 먼저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 양반은 살림이 워낙 가난해서 해마다 관가에서 곡식을 빌려다 먹고 여러 해 동안 갚지 못하였다. 

이렇게 빌린 관곡이 그럭저럭 천 석이 넘었다.

 

어느 날 강원도 감사가 정치의 잘잘못을 가리고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기 위해 정선 고을에 들렀다. 

감사는 관곡의 출납을 조사하다가 몹시 노하였다.

"어떤 놈의 양반이 이렇게 많은 관곡을 축냈단 말이냐?"

감사는 양반을 당장 잡아 가두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 양반이 무슨 수로 천 석을 갚는단 말인가?'

영을 받은 군수는 마음속으로 측은하게 여겼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마 잡아 가두지도 못하고 감사의 서슬 퍼런 영을 거역할 수도 없어서 그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양반 역시 곧 이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밤낮으로 훌쩍훌쩍 울기만할 뿐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였다. 

양반의 아내가 이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혀를 끌끌 찼다.

"당신은 평생 글만 읽더니 이제는 관가에서 꾸어다 먹은 곡식도 못 갚는구려,

양반 양반 하더니 참 딱하오!  그놈의 양반이란 것이 한 푼 값어치도 안나간단 말이오!"

 

때마침 그 마을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부자는 양반이 곧 붙잡혀가게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식구들을 모두 모아 놓고 의논 하였다.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늘 귀하게 대접받고 떵떵거리며 사는데 우리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늘 천한 대접만 받는단 말야.  말 한 번

거들먹거리며 타보지도 못하고, 양반만 보면 절로 기가 죽어 굽실거리며 섬돌아래 엎드려 절하고, 늘 코를 땅바닥에 대고 엉금엉금

기어야하니 참 더러운 일이야.  이제 저 건넛집 양반이 관곡을 갚지 못해 곧 붙잡가게 생긴 모양인데 그 형편에 도저히 양반 자리를

지켜내지 못할거란 말이야.  이 기회에 내가 그 자리를 사서 양반 

행세를 한 번 해보면 어떨까?"

 

부자는 곧 양반을 찾아가 자기가 관곡을 대신 갚아줄테니 그 대가로 양반 자리를 넘겨달라고 흥정을 붙였다. 

양반은 속수무책으로 잡혀갈 날만 기다리던 참이라 몹시 기뻐하며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하였다. 

부자는 곧바로 곡식을 관가에 싣고 가서 양반의 관곡을 모두 갚아주고 양반 자리를 사들였다.

 

군수는 양반이 관곡을 모두 갚았다는 말을 통인에게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그 형편에 천 석이나 되는 관곡을 어떻게 한꺼번에 갚을 수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위로도 할 겸 궁금증도 풀 겸 몸소 양반을 찾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반은 의관도 갖추지않고 벙거지에 짧은 잠방이를 입은 채 사립문 밖 땅바닥에 엎드려

"쇤네, 쇤네" 하면서 군수를 감히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군수는 깜짝 놀라 말에서 뛰어내려 양반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려 하였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대관절 왜 이러시오?"

 

그러나 양반은 더욱 황송한듯 연방 머리를 조아렸다.

"황송하옵니다.  쇤네가 양반 자리를 팔아서 관곡을 갚았사옵니다.  이제 저 건넛집 부자가 양반이옵니다. 

그러니 어찌 이미 팔아먹은 양반 행세를 하겠나이까?"

 

군수는 그 말을 듣고 감탄하였다.

"허허, 그 부자가 참으로 점잖구려.  그 부자야말로 진실로 양반답구려.  부자이면서도 인색하지 않으니 의로운 것이요,

남의 어려운 일을 기꺼이 도와주니 어진 것이요, 낮고 천한 것을 미워하고 높고 귀한 것을 좋아하니 어찌 슬기롭다 하지 않으리오. 

그 의롭고 어질고 슬기로운 사람이야말로 진짜 양반이 아니겠소.  그러나 이보시오, 아무리 그렇다해도 귀한 양반 자리를 사고팔면서

어찌 증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사사로이 주고받는단 말이오?  그러면 나중에 소송의 꼬투리가 되기 쉬우니 내가 이 고을의 군수로서 고을

백성들을 모아 증인을 세우고 직접 증서를 만들어 서명을 해야겠소."

 

군수는 곧 돌아가 정선 고을에 사는 양반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리고 농사꾼과 공장工匠, 상인들까지 관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관할 수 있게 하였다. 

양반이 된 부자는 마땅히 마루 위 높은 자리에 앉히고, 천민이 된 양반은 당연히 섬돌 아래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게 하였다. 

그리고 고을의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증서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1745년 9월 아무날에 이 증서를 만드노라.  양반을 팔아서 관곡을 갚았는데 그 값이 쌀 일천석이라.  본래 양반은 여러 가지로 불리는데, 글만 읽는 양반은 '선비'라 하고, 벼슬살이하는 양반은 '대부'라 하고, 덕이 높은 양반은 '군자'라 하느니라.  임금앞에 나아가 무반은 서쪽에 늘어서고 문반은 동쪽에 늘어서니 이 양쪽을 통틀어 양반兩班이라 하느니라.  이 여러가지 중에서 마음대로 골라잡으면 되느니라.

 

그러나 양반이 반드시 지켜야할 것이 있으니 이것을 어겨서는 안되느니라.  양반은 절대로 천한 일을 해서는 안되며, 옛사람의 아름다운 일을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세워야 하느니라.  새벽 네 시가 되면 일어나 이부자리를 잘 정돈한 다음 등불을 밝히고 꿇어앉는데, 앉을때는 정신을 맑게 가다듬어 눈으로 코끝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두 발꿈치는 가지런히 한데 모아 엉덩이를 괴어야 하며, 그 자세로 꼿꼿이앉아 『동래박의東來薄儀』(중국 송나라때 여조겸이 지은책)를 얼음위에 박 밀듯이 술술술 외워야 하느니라. 

 

배고픈 것도 참고 추운것도 견뎌야 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가난하다는 말을 입밖에 내서는 안되느니라. 

그리고 일없이 앉아있을 때는 건강을 위하여 아래윗니를 마주쳐 딱딱딱 소리내며, 손바닥을 귀에 댄 채

손가락을 목 뒤로 돌려 뒤통수를 톡톡 퉁기면서 콧소리를 킁킁내며, 입맛을 다시듯이 입안에 침을 모아 삼켜야 하느니라. 

탕건이나 갓의 먼지는 소맷자락으로 문질러 털되 먼지가 파도치듯이 일어나게 해야 하며, 세수할 때는 주먹의 때를 밀지

말며, 양치질해서 입냄새가 나지 않게 하며, 하인을 부를 때는 "도올쇠야---"하고 목소리를 길게 뽑아서 부를 것이며,

걸을 때는 느릿느릿 신발을 땅에 끌며 걸어야 하느니라. 

 

 

『고문진보古文眞寶』(중국 송나라때 황견이 중국 역사상 훌륭한 시와 문장을 모아 엮은책)당시품휘唐詩品彙』(중국

명나라의 고병이 당나라의 훌륭한 시를 가려 뽑은 책)를 깨같이 베껴 쓰되 한 줄에 백 자가 되도록 해야하며, 손에 돈을

만져서는 안되며, 쌀값을 어서는 안되며,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어서는 안되느니라. 

 

 

밥을 먹을때는 맨 상투 바람으로 먹지 말며, 국부터 먼저 마시지 말며, 국을 먹을때는 방정맞게 후루룩 소리나게 마시지 말며, 젓가락을 방아찧듯이 톡톡거리지 말며, 날 파를 먹고 냄새를 풍기지 말아야 하느니라.  술 마실때는 수염을 쭉쭉 빨지 말며, 담배 피울때는 볼이 오목하게 파이도록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지 말아야 하느니라.  아무리 화가나도 아내를 때려서는 안되며, 분통이 터져도 그릇을 던져서는 안되며, 주먹으로 아이를 때려서는 안되며, 종에게 잘못이 있다고 때려 죽여서는 안되며, 마소를 야단칠때도 그것을 팔아먹은 원래 주인을 욕해서는 안되느니라. 

 

아프다고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해서도 안되며, 제사를 지낼때 중을 불러다가 재를 올려서도 안되며, 춥다고 화롯불을 쬐어도 안되며, 말할때 침을 튀겨서도 안되며, 소잡는 백정

노릇을 해서도 안되며, 돈놀이를 해서도 안되느니라.  

 이와같이 양반에게는 엄연히 지켜야할 도리가 있으니 양반이 된 부자가 여기서 한 가지라도 어길때는 천민이 된 양반이 이 증서를 가지고 관가에 와서 소송을 하여 양반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느니라.

 

이렇게하여 군수가 증서 끝에 먼저 이름을 쓰고 좌수와 별감도 나란히 서명을 하였다.

곧이어 통인이 도장을 가져와 여기저기 풍풍 찍어대는데, 그 소리가 마치 북을 치는것과 같고, 그 찍는 모양이 밤하늘의 별자리와 같았다.

 

호장이 이 증서를 소리높여 읽어주니, 부자는 길게 한숨을 내뿜으며 이렇게 뇌까렸다.

"양반이라는게 겨우 요것뿐이란 말이오?  양반은 신선이나 다름없다더니 정말 요것 뿐이라면 그 많은 곡식만 축낸것이 억울하오. 

아무쪼록 좋은 쪽으로 잘 좀 고쳐 주시오."

 

군수는 부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미 만들어진 증서를 내버리고 다시 고쳐 쓰기 시작하였다.

 

 

하늘이 백성을 낼때 네 가지(사농공상士農工商)로 구분하였느니라.  이 가운데 가장 으뜸 가는것이 선비요 곧 양반이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느니라.  양반은 몸소 농사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으며, 조금만 글을 읽으면 크게는 문과에 급제

하고 작게는 진사가 되느니라.  문과에 급제하게 되면 홍패(합격증)를 받는데 그 길이는 비록 두 자밖에 안되지만 이것만

받게되면 백 가지를 두루 갖추게 되니 돈 자루나 다름없는 것이니라.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첫 벼슬을 하더라도 오히려 늦은

것이 아니니 이름 높은 음관(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덕으로 얻는 벼슬)이 될 수 있느니라.  게다가 남인에게 잘만 보이

큰 고을 수령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니 귓바퀴가 일산 덕분에 하얘지고, 종놈들의 "예이---" 하는 소리에 먹지 않아도

절로 배가 부르고, 방안에는 어여쁜 기생을 데려다 앉혀놓고, 들에는 학을 길러 날게 할 수 있느니라.  하다못해 시골에서

가난한 선비로 살더라도 자기 멋대로 할 수 있으니 이웃집 소를 빌려 자기 밭을 먼저 갈게 하고, 마을 사람을 불러다가 자기

밭을 먼저 김매게할 수 있느니라.  만일 어떤 놈이 양반을 업신여기고 말을 듣지 않을때는 그놈의 코에다 잿물을 들이 붓고

상투 꼬투리를 잡아 휘휘 돌리고 수염을 잡아 뽑는다 하더라도 감히 원망할 수 없으니......

  

새로 고쳐 쓴 증서가 거의 반쯤 되었을때, 부자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귀를 꽉 막고 혀를 설레설레 내둘렀다.

"제발 그만! 그만 하시오!  양반이라는 것이 참 맹랑하기도 하오.  나리님네들은 지금 나를 날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오?"

 

부자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죽는날까지 다시는 '양반'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 여기에 실은 전문은 창비에서 펴낸 <우리 고전> 가운데 연암 원작, 옮긴이는 장철문 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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