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영화

수난이대

연이♥ 2008. 3. 22. 09:43

 

 

 

연이 형제에게 논술대비를 위해 사준 <20세기 한국소설>은 화장실용으로 그만이다.(펴낸곳 창비)

한 권에 네다섯 명의 작가들 단편을 실어 놓았는데 대부분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무수히 등장하는, 말 그대로 청소년 필독서인 셈이다.

다만 문제가 조금 있다면 청소년인 연이형제에겐 홀대를 받고 내겐 화장실용 이라는 점!

  

하근찬의 「수난이대」는 일제강점하 일본의 침략전쟁에 강제징용되어 한쪽 팔을 잃어버린 아버지와

한국전쟁에 참전해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의 웃지못할 해후를 통해 근현대사의 민족적 수난을 집약시킨 수작으로 꼽힌다.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도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었다...

 

소설의 첫 시작은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돌아온다는 편지를 받고서 설레는 맘으로 아들을 마중나가는 아버지의 경쾌한 발걸음으로 시작된다.

폭격을 맞아 떨어져나간 한쪽 팔의 옷소매를 조끼주머니에 꽂은채 나머지 한쪽 팔을 흔들면서 용머리 고개를 넘고 시퍼런 물이 넘실거리는

개천의 외나무 다리를 건너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초가 주막집을 지나 기차역으로 그렇게 신바람이 나서 아들을 마중나간다.

 

기차가 도착하고 썰물처럼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을 빠져나가도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 거리던중 

두 개의 지팡이를 짚은 상이군인이 "아부지" 하고 부르며 다가온다.

 

집으로 돌아가는길...

아들의 모습에 부아가 치민 아버지는 아들보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다 주막집에 들러 대포를 서너사발 들이키고 아들에게는

국수를 곱배기로 말아 먹인 다음에야 겨우 분을 삭인다.

 

대포집을 나와 걸음이 느린 아들을 앞세우고 아들을 위해 산 고등어 한 마리가 한쪽 팔에서 흔들거리는 가운데 아버지가 뒤따라가며

서로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광경은 어찌보면 코믹하기까지 하다.

 

개천에 이르러 지팡이를 짚고서는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 없기에 팔이 하나뿐인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아들은 아버지의 고등어 꾸러미를

대신 들고 부자는 시퍼런 물이 쉴새없이 흐르는 개천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수난이대」는 하근찬의 등단 작품으로 민족의 암울한 현실속에서 부자가 겪는 수난을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로 잘 드러냈다. 

특히 마지막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대목에서는 역사적인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재기를 위한 화합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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