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영화

행복해지는 법

연이♥ 2008. 4. 23. 10:13

 

 

 

어느 날 아침, 한가로이 강물을 바라보며 아침 커피를 즐기고 있는데,

열살쯤 된 여자 아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굿모닝, 마담." 하며 복권을 사라고 한다.

남자같이 짧은 머리에 허름한 차림이지만 눈망울만은 초롱초롱하다.

 

영어를 하는게 신기해서 영어는 어디서 배웠냐니까 도리어 나에게 어디에서 왔느냐, 이름은 무엇이냐는 등 간단한 '신원조회'를 한다.

그런 후에 자기는 아침에는 복권을 팔고 오후 늦게 학교에 다닌다고 대답한다.  왜 그때 학교를 가느냐니까 오후에 문 여는 학교는 수업료가 없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놀랍다.

"아이 엠 럭키(나는 운이 좋아요)!"

 

귀를 의심하며 놀라서 아이를 쳐다보았더니, 여전히 생글생글 눈을 빛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앵벌이였어요. 거리에서 징징거리며 구걸하는 거지요. 그때는 복권을 사다 팔 돈이 없었거든요.

우리 집이 정말 가난했어요.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가 피를 팔아서 먹을 것을 사야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내가 돈을 조금 모아

복권을 팔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구걸하지 않아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우리 언니는 아직도 구걸을 하고 있는데, 언니는 복권 파는 것보다

그게 더 좋대요, 바보같이."

 

아주 짧은 영어지만 뜻은 다 통한다.  아침에는 복권이나 개비 담배 등을 팔고 오후에는 무료 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여자 아이가

자기는 운이 좋다고 확신하고 있는 거다.  놀라운 일이다.

 

꼭 안아주고 싶은 기특함과 어디로 숨어 들어가고 싶은 부끄러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소위 돈 많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래서 온갖 호사를 누리고 있는 우리 가운데 누가 이 꼬마처럼 자신 있게 자신을 행운아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사소한 불편이나 어려움에도 엄살과 투정을 부리고 사는건 아닌가?  행복의 조건이란 이런 것이라고 외부적인

요소들만 정해놓고, 자기가 행복하지 못한 것을 몽땅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한 번 아이를 쳐다본다.  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참 기특하다.  극빈자의 둘째 딸로서 이 아이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엾고 딱하긴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다.  앞으로 살면서 일상은 고달플지언정 절대로 웃음을 잃거나 삐뚤어지게

자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기특한 꼬마에게 정표로 무엇인가 주고 싶어 주머니에 있던 빨간 복주머니 모양의 열쇠고리를 손에 쥐어주었다.

"꼬마 친구, 최고의 행운을 빌어요!"

 

꼬마는 고맙다는 인사 대신 한 번 활짝 웃어 보인 후 뒤돌아 몇발짝 가더니만 다시 내게로 와서 손을 내민다. 

고사리 같은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조악하게 인쇄된 복권 한 장.

"나도 한국 이모에게 최고의 행운을 빌게요."

 

아이는 또록또록한 영어로 말하더니 한 번 안아줄 틈도 주지 않고 뒤돌아 달아나듯 뛰어간다.

오늘 아침 나의 하느님은 꼬마 여자 아이를 앞세워 내게 '행복해지는 법'을 확실히 가르쳐주셨다.

 

 

 

                                                한비야,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가운데 ' 베트남 호치민에서 만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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