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영화

해돋이를 보며

연이♥ 2008. 5. 20. 08:59

 

 

 

 

 

 

해가 뜰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야 좋을 성싶지만 사실은 그게 해돋이 구경으론 가장 멋대가리가 없다.

둥글고 붉은 구리 쟁반 하나가 바다 속에서 불쑥 솟아날 뿐이니 무에 볼 것이 있겠는가.

해는 임금의 기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임금을 찬미하여 "바라볼 땐 구름이요, 다가서니 해일러라" 라고 한 것이다.

이렇듯 해가 돋기 전에는 반드시 자욱한 구름 기운이 그 가장자리에 몰려들어 마치 앞길을 인도하는 듯, 뒤를 따르는 듯,

의장을 갖춘 듯, 수천 수만의 기병이 임금을 옹위하여 모시는 듯, 오색 깃발이 펄럭이고 용과 뱀이 꿈틀거리는 듯해야 비로소 장관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구름이 너무 많이 끼면 도리어 흐리고 가려져서 또한 볼 것이 없다.

새벽엔 밤새 모아진 순음純陰의 기운이 내리 쏘이는 태양과 맞부딪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바위 틈에선 구름을 토하고 시냇가에선 안개를 뿜어내면서 서로 피어올라 해가 돋을락 말락 할 때 원망스러운 듯,

수심에 겨운 듯, 흙비속에 잠긴 듯 빛을 잃게 되는 것이다. 

가 예전에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구경하고 시를 한 수 지었다.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보며(叢石亭觀日出)

 

 

나그네 밤중 되자 서로를 부르며 대답하는데

멀리서 닭울음 소리 대답하는 이 없구나

저 멀리 가장 먼저 들린 닭울음 소리 그 어디멘가

파리 소리처럼 희미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네

마을의 개 짖던 소리 그마저 뚝 그치누나

적막이 감돌자 가난한 서생의 마음 서늘해지네

이 때 또 한 소리 귓가에 울려와

자세히 들어보니 처마 위 닭울음 소리

총석정은 예서 십리

기필코 넓은 바다 마주하여 해돋이를 보리라

하늘과 물 잇닿아 경계가 없고

성난 파도 벼랑에 부딪히니 벼락이 이는 듯

거센 바람 휘몰아치니 온 바다 뒤집히고

뿌리째 산이 뽑혀 바위더미 무너지는  듯

고래와 곤의 싸움에 육지 솟아난들 괴이할 것 없고

대붕이 날아올라 바다 옮겨간들 걱정할 것 없다네

다만 근심은 이날 밤 오래도록 새지 않을까

지금의 이 혼돈 누가 다시 거두어들일지

설마 어둠의 나라에 큰 난리가 난 건 아니겠지

땅 밑바닥 일찌감치 닫혀 해 드나드는 곳 얼어붙었는가?

저 하늘의 굴대 오래도록 빙빙돌아

서북으로 기울어 하늘에 맨 동아줄 끊어진 건 아니겠지

세 발 달린 까마귀 빠르게도 나는데

그 누가 발 하나를 줄에 달아매었는가?

*해약의 옷과 띠에 검은 물방울 스며들고

*수비의 쪽진 머리 차갑기 짝이 없네

큰 물고기 거침없이 말처럼 내달릴 제

붉은 갈기 푸른 갈기 뒤엉켜 제멋대로

하늘이 만물 낼 제 그 누가 보았는가

미친 듯이 고함치며 등불 켜고 보련다

창날 같은 혜성 꼬리 불살을 드리운 듯

앙상한 나무위에 부엉이 울음 고약쿠나

어느덧 바다 위에 작은 멍울 맺혔다네

용의 발톱 잘못 닿아 독이 올라 아픈듯이

그 빛깔 점점 커져 만리를 뻗치누나

물결따라 일렁이는 햇무리 꿩 가슴의 무늬같네

아득한 이 천지 이제야 경계 생겨

붉은빛 선을 그어 두 층으로 나뉘었네

어둠 세계 깨어나서 온 누리가 물들고

만물에 빛이 스며 비단 무늬 이루었네

산호가지 베어내어 숯만들어 낸 이 누구인가

동녘에 해 떠오르자 찌는 듯 뜨거워라

염제는 풀무 부느라 입이 비뚤어졌을 테고

축융은 부채 부치느라 오른팔 떨어질 듯 아프겠지

새우 수염 가장 길어 불사르기 아주 쉽고

달팽이 집 단단할수록 익기도 잘도 익네

구름 안개 모두 모두 동으로 몰려들어

찬란한 온갖 상서 제각기 드러내네

천자께 조회드리기 전이라 갖옷은 버려 두었고

병풍과 예복은 그대로 펼쳐져 있네

초승달 아직도 계명성과 마주서서

*등나라 설나라가 힘겨루듯 서로 빛을 다투누나

붉은 기운 점점 엷어 오색이 찬란해지고

멀리 솟구친 물결 머리 먼저 절로 맑아진다

바다 위 온갖 괴물 모두 도망가 숨어 버리고

*희화만 홀로 남아 수레를 타는구나

육만 사천 년 동안 둥글더니

오늘 아침엔 원을 바꾸어 네모가 되었네

만 길이나 깊은 바다속에서 누가 길어 올렸을까

아하, 하늘에도 섬돌 있어 오를 수 있겠구나

*등림의 가을 과실 붉은 열매 한 알인 듯

해 아드님이 찬 비단 공 반만 솟다 말았는 듯

*과보는 헐떡헐떡 쉬지 않고 뒤쫓으며

여섯 용 앞서 인도하며 자못 의기양양

하늘 끝 어두워져 얼굴을 찌푸린다

바퀴 힘껏 끌어올리려 있는 기운 다하고자

바퀴처럼 둥글지 않고 항아리처럼 길쭉하네

솟았다 잠겼다 출렁이는 소리 들리는 듯

어제와 같이 환히 만물을 다 보려면

그 누가 두 손 받을어 번쩍 들어 올릴꼬

 

 

* 해약 : 바다귀신

* 수비 : 바다의 여신

* 등나라 설나라 : 전국시대 제후국중 가장 세력이 약했던 두 나라

* 희화 : 태양을 몰고가는 귀신

* 등림 : 복숭아나무 숲

* 과보 : 해와 경주하던 신선 

 

 

 

                                        박지원 <열하일기>중에서...

 

  

 

 

  * 그린비에서 펴내고 고미숙,길진숙,김풍기가 엮고 옮긴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가 출처임을 밝힙니다.

 

 

  


             

 

 

 

'책 그리고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 산문 산책  (0) 2008.09.12
자족의 경계에 대하여  (0) 2008.06.24
행복해지는 법  (0) 2008.04.23
별로 떠난 왕자  (0) 2008.04.02
양반전/박지원  (0) 2008.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