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우연이와 함께 그리는 지리산 지도

연이♥ 2007. 9. 23. 22:01

 

 

밤새 비가 내렸다.

새벽에도 여전히 비가 내린다.

우연이와 함께 가기로 했던 산행 이었지만 비를 핑계로 혼자 떠나려 생각하고 준비를 하는데

엄마의 속마음을 잠결에 알아챈걸까 깨우지 않았는데도 우연이가 벌떡 일어나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한다. 

 

새벽 5시 20분에 출발하는 익산발 여수행 전라선 열차에 몸을 싣고 그렇게 또 지리산을 만나러 간다.

연이형제 유치원 다니던 시절 그 덥디더운날에 두 녀석들에게 기차를 태워주겠다고 군산행 완행열차를 탔었다.

되돌아오는 기차시간에 맞추느라 내겐 늘 낯설게만 느껴지는 도시 군산에서 지루한 몇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안타

깝게도 두 녀석은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기차가 출발하자 우연이가 그랬다.

"기차 한 번 꼭 타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새벽기차는 익산역을 출발하여 전주를 지나고 남원을 지나 섬진강 물길이 보이는 곡성을 지나 우리들의

목적지인 구례구역에 키만 껑중한 우연이와 나를 내려주고 남으로남으로 내려간다.

 

구례구역에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택시를 이용해 구례터미널로 가서 성삼재 가는 버스를 타려고 맘먹었던 것과는 달리 버스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걸로 생각을 바꿔 기차역앞에 대기중인 택시기사와 흥정을 끝내놓고 근처 소박한 식당에서 아침으로

올갱이국을 먹었다.

 

순이네집 이었던가? 

올갱이국 맛은 괜찮았다. 

단, 대여섯 가지 반찬이 나왔지만 단 한 번의 젓가락질을 허용하지 않을만큼 반찬이 형편없었다.

 

 

        

         성삼재 주차장-노고단 고개- 피아골 삼거리- 임걸령- 노루목-반야봉(왕복 18km, 산행 소요시간:7시간)

 

 

 

지리산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그저 막연히 비가 그치겠지 싶어 우비도 없이 자그마한 우산만 챙겨 갔는데 비는 쉬지않고 내린다.

 

천왕봉의 연인이라는 반야봉~

첫 만남이다.

그만큼 설렘이 컸지만 도대체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다.

 

 

 

 

처음 성삼재 주차장을 출발할때만해도 바람이 거세고 안개가 심해 걱정을 많이 했지만

노고단을 향해 오르다보니 잠시 안개가 걷히고 화엄사 계곡에 구름바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는 섬진강 물길을 조망할 수 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구름에 가렸다.

 

우연이의 감상,

" 용이 승천할것 같아요."

 

 

 

 

호~

기특한지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꽃에는 벌 아니겠냐며 우중에도 불구하고 꿀벌이 날아와 이질풀(쥐손이?)의 속살을 파고든다.

 

 

 

 

피아골 계곡,

지난봄 나홀로 산행때 아기진달래가 막 피어나기 시작했었는데 어느새 풀빛이 가을빛을 띠고 있다.

 

 

 

 

쉴새없이 내리는 비에

산부추도 애린 구절초도 그모양이 애처롭구나

 

 

 

 

"엄마, 지리산에 정말 곰 있어요?

"응"

"엄마는 곰하고 마주치면 도망칠거예요? 사진부터 찍을거예요?"

" ㅎ 도망칠거다~"

"곰하고 마주치면 절대 뛰지 마래요. 곰은 네 발로 뛰기때문에 사람보다 훨 빠르대요."

"그럼 어떻게 해야는데?"

"흘끔흘끔 살펴보면서 천천히 걷다가 거리가 많이 벌어지면 그때 뛰어서 도망치는 거래요."
"만약에 곰이 덤비면?"

"엎드려서 내장이나 머리 안다치게 하고서 구조요청 하래요."

"구조요원 올때까지 곰한테 맞으면서?"

"예"

 

흠...

연이모자의 대화가 마치 곰같다는~

 

 

 

 

지리산에는 지금 구절초가 지천에 피어있다.

 

 

 

 

임걸령,

탁 트인 고갯길에 서서 잠시 쉬어가기엔 그만인 곳,

한 그루 소나무가 반야봉에 가려면 왼쪽으로 가라며 손발 모두 동원해서 길 안내를 하고 있다.  

 

 

 

 

 

 

오매~

반야봉에는 벌써 단풍 들었네~

 

 

 

 

세 시간 반만에 도착한 반야봉에도 여전히 비가 내린다.

지리산에서 기가 가장 쎄다는 반야봉에 올랐건만 내리는 비에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볼수가 없다.

 

비는 내리고,

배는 고프고,

연이모자 참으로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겠기에 바위에 쪼그리고 앉아 우산을 쓰고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었다.

 

아무래도 지리산 산신께서 나를 미워하나 보다.

지난 여름 천왕봉 산행때는 지리산을 안보여 주시더니

오늘은 끝내 처녀 엉덩이처럼 봉긋한 반야봉을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지리산도 제대로 못 봤 다!

 

 

 

 

 

 

노고단 고갯길에 도착한 우연이의 한 마디,

"징그럽게 걸었네~"

 

 

 

 

 


A Question Of Honor/Sarah Brigh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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