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비오는날의 수채화

연이♥ 2007. 8. 12. 21:59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비가 좀 내린다한들 어떠리...

마음은 이미 길을 떠났는데 비가 내린다고 가라앉혀질 마음이더냐.

꾸려놓은 배낭(구운 식빵 두 조각, 사과 한 개, 물 한 병, 보온병에 담은 냉커피)를 챙겨 집을 나섰다.

 

비가 제법 내린다.

주룩주룩... 

 

지난 목요일 아침 남편과 두연이 나 셋이서 밥을 먹다가,

 

- 난 이번에 지리산에 갔다왔어도 어째 안갔다온것 같네...아무래도 안개때문에 지리산 조망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가봐.

- 엄마, 지리산 천왕봉이 해발 1915m 거든요.  지금 장난하시는 거예요!

- 니네 엄마 또 병 도진다!

- 여보, 지리산에서 반야봉이 기가 제일 쎄다 그러네?

- 엄마, 전 절대로 안가욧!

- 내비둬라 저러다 제풀에 꺾이게!

- ㅠ.ㅠ

 

 

월요일 퇴근후에도 약속이 잡혀 있는데 지리산엘 가게되면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동안이나

남정네들끼리 저녁을 해결해야 하다보니 아무래도 지리산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돌아올 수 있는곳으로 행선지를 고르고고른게 바로 순창 강천산이다.

 

강천산엔 언제나 단풍철에만 가봤는데 많은 일행들과 함께 하다보니 대개는 구장군폭포에서

턴해서 구름다리를 건너 그다지 높지 않은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정도의 산행만 했었다.

 

구장군폭포에서 발걸음을 돌릴때마다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강천댐 너머 그곳...

바로 그곳에 가고 싶었다.

 

 

 

순창 강천산 병풍폭포->구장군폭포->형제봉 삼거리->담양 금성산성 북문(왕복 14.2km, 산행시간 5시간 10분)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고...

강천산 매표소에서는 문화재관람료 천 원을 받으면서 튜브로 된 고추장 한 개를 준다.

물론 지역 특산품을 홍보하기 위해서겠지만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입장료에 선물(ㅎ)까지 받으니 어쨌거나 기분이 좋다.

 

 

 

 

병풍폭포에서 구장군폭포까지 2.5km 구간은 웰빙산책로라 해서 맨발로 걸을 수 있게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걸었을텐데 우산도 써야 하다보니 등산화 들고가기가 부담스러울것

같아서 그냥 걸었더만 비가 내려 푹신푹신해진 모래땅이어서 걷기가 몹시 불편하다.ㅠ.ㅠ

 

 

 

 

 

 

잠시 비가 그치고...

이곳 바위에 서서 맞은 바람이 정말 시원했다.

천상의 바람이라 하고 싶다.

 

 

 

 

형제봉 삼거리...

안개 자욱한 이곳을 지나치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

이런걸 두고 데자뷰라 하는건가?

 

주차장에서 내릴때는 비옷을 입은 단체 등산객들이 꽤 많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등산로로 접어든 후로는

단 한명의 등산객을 만날수가 없다.  산꾼들이야 원래 계획을 세워놓으면 비가오나 눈이오나 산행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산을 오르는 사람도 내려오는 사람도 보이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댐에서 등산로가 나뉠때 조금 긴 코스를 택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반대쪽으로 가지 않았나 싶다.ㅠ.ㅠ

 

비오는날의 산행...

요즘엔 등산화나 등산복이 워낙 기능이 뛰어나다보니 비를 맞아도 금세 말라버리기에

작은 우산으로 얼굴과 어깨만 가리면 아무리 거센 비가 와도 산행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단, 바위가 많이 미끄러우므로 바위를 지날 때는 미끄럼 주의!

 

비오는날 나홀로 걷는 산행...

좋다...

그냥 좋다...

마음 탁 풀어놓고 걸으니 참 편안하다.^^

 

 

 

 

 

 

 

 

 

 

가도가도 끝이 없을것만 같던 오솔길이 이어지더니 갑자기 시야가 트이면서 웬 산성이 보인다.

'가만가만...저거 혹시 담양 금성산성 아냐???'

 

아니나다를까 금성산성 북문이라고 표지판이 있다.

지난해 가족여행때 올랐던 곳이 남문이었으니 그곳에서 북쪽을 향해 넘어오다보면 이쪽으로 나온다 이거지?

거 참 재밌네!

무턱대고 시작한 산행이 이렇게 즐거움을 안겨주네 또?

 

눈에 띄는 정상도 없는것 같고 직행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더 가기도 무리일 듯 싶어서

그쯤에서 되돌아오기로 맘먹고 그곳에서 초라하지만 점심을 먹기로 하고 산성에 걸터 앉았다.

잠깐의 식사 시간에도 비는 또 다시 세차게 퍼붓고, 나는 오기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사진도 찍고,

시원한 바람에 얼굴도 맡기고 그렇게 30분을 놀았나보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정말 전망이 끝내줄거란 아쉬움을 금치 못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하산했다.

 

 

 

 

 

 

 

 

 

 

 

 

구장군폭포...

언제봐도 참 멋진 폭포다.

자연폭포에 인공으로 물을 내리지만 오늘은 비가 내려 자연 그대로인 셈이다. 

 

 

 

 

 

 

비가 그치면 담아야지 생각하고 하산길로 미루었던 강천산의 아름다운 풍경들...

이제보니 강천사 대웅전앞 상사화 한 무리를 빼먹었네...ㅠㅠ.

 

 

 

 

하산길에는 비가 정말 많이 내렸다.

와...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을 내려오니 나들이온 사람들로 강천사 가는길이 엄청시리 북적인다.

와...이렇게 비가 내리는데도 나들이를 하는구나...

하긴...다른 사람들이 볼때 비오는날 우산 쓰고 산으로 들어가는 나도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

 

 

 

 

선녀의 옥비녀를 닮은 꽃 옥잠화가 함초롬히 비를 맞으면서도 그윽한 향기를 피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