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여름 지리산 스케치

연이♥ 2007. 8. 2. 14:44

 

 

아침 7시... 펜션에서 올려다본 지리산 천왕봉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경주를 출발, 경남 산청 중산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

전날에 경주에서 숙소를 찾아 다니던 시간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지리산에 도착한 셈이다.

 

하지만 경주에서와 지리산에서의 상황은 많이 달랐다.

경주는 수학여행철이 성수기 이다보니 여름휴가철은 비수기나 마찬가지여서 그야말로 저렴한 가격으로

얼마든지 맘에드는 숙소를 고를수 있었지만 지리산은 여름휴가철이 성수기인만큼 예약도 안한 상태에서

내입맛에 맞는 잠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리 예약을 할까 싶기도 했지만 예약을 할 경우 성수기를 이용한 바가지 요금을 각오해야 하고

만약에 생길지도 모르는 변수로 인해 여행계획이 취소될 경우에 예약금을 고스란히 날릴 우려가 있기에

일단 부딪쳐 보자는 도전정신으로 과감히 길을 나섰던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시설 좋고 위치 좋은 곳에 있는 펜션들은 모두 예약이 완료 되었거나 턱없이 비싼 요금을

요구했다.  반면에 요금이 조금 저렴한 민박집들은 욕실이 딸리지 않았거나 실내에서 취사가 허용이 안되거나

두연이나 남편에게는 꼭 필요한 텔레비전이 없거나 방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거나...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원하는 하룻밤 잠자리란 일단 취사 가능해야 하고, 지리산에서는 필히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야 하고, 텔레비젼 유선방송까지 잘 나와야 하고, 에어컨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없으면 선풍기라도 성능이

좋아야 하고, 무엇보다 넓고 깔끔한 방이면 더할나위 없겠지.

 

자그마치 한 시간을 돌고 또 돌아다닌 끝에 12만원짜리 펜션을 가격 흥정해서 9만원에 낙찰을 보았다.

비록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예약을 했더라면 꼼짝없이 내야하는 요금에서 3만원을 깎았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하지만 전날 경주에서는 3만원에 취사도 되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잘 수 있었으니 자꾸만

경주에서의 하룻밤이 그리워진다.

 

다음날은 천왕봉 산행을 해야하기에 준비해간 토종닭으로 부재료 듬뿍 넣어 백숙 만들어서 거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계곡의 물소리를 자장가삼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어두워진 뒤에서야 숙소를 잡느라 밤엔 몰랐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방에 누운 상태에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안개가 뿌옇긴 해도 천왕봉 너머로 흰구름도 보이는게

오늘은 모처럼 날씨가 화창하려나보다 싶어 산에 오르기도 전에 힘이 불끈 솟는다.^^

 

 

 

가자, 천왕봉으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는 직선 코스 가운데 가장 짧다는 중산리-칼바위-법계사-천왕봉 코스(왕복 10.8km),

동쪽 지리산인 산청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지리산이라 해도 그만큼 거리상으로도 먼 곳에 있다.

 

머리감는데 보통 30분 이상이 걸리는 두연이와 한바탕 실랑이끝에 산행을 시작한 시간이 9시 30분,

현지에서 잠을 자고 시작하는 산행치고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산행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남편에게는

중간 지점인 법계사 까지만 오를것을 권유해 셋이서 사이좋게 좁은 등산로를 걷기 시작한다.  그날따라 유난히

말을 아끼는(포기 의사를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는점) 태도가 몹시 수상쩍었지만 그래도 못가겠다고 안하는걸

다행으로 여기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처음 한 시간이 고비니까 잘 버티어 줄것을 당부하며 가벼운 발걸음을 뗐다.

 

10분쯤 지났을까?

내 예감이 적중한다.

잠깐 숨좀 돌리고 갈테니 자기는 신경쓰지 말고 먼저 가라며 남편이 가던 걸음을 멈춘다.

남편의 속셈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고 바로 따라오라고 하고서 두연이와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니까 남편은 이미 처음부터 천왕봉 등산은 아예 안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단지, 가족과의 여행인만큼 불협화음을 내지 않기위해 오르는척 하다가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전술을 택했던것.

그런 남편의 속마음을 간파한 나 역시 무리해서 가자고 조르지 않는다는것.

서로를 배려할줄 아는 이상적인 부부상이 바로 우리 부부???

 

 

 

지리산 캐릭터?  자신의 신앙의 대상은 토템이라고 말하는 두연이는 정말 곰을 좋아한다.

 

 

오늘따라 두연이의 발걸음이 무척 경쾌하다.

두연이와 함께 하는 산행은 늘 티격태격 하기가 예사인데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보인다.

 

- 두연아, 힘들지 않아?

- 전혀요.  오늘따라 왜이렇게 몸이 가벼운지 모르겠어요.  날아갈것 같아요.

- 음~ 그게 바로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서 그런거란다.  지난번에 형하고 뱀사골 갔을때 형도 그러더라.

  몸과 맘이 상쾌해서 기분이 참 좋다고.

- 아, 신기해요.  어제 경주에서는 산에 올라갈때 배도 아프고 정말 짜증났는데 오늘 왜이러지?

 

역시, 젊은피라서 산의 정기를 빠르게 흡수하는 모양이다.

'헌데 난 왜이러지?  오늘따라 왜이리 몸이 무거운거야 ㅠ.ㅠ'

 

 

★ 지리산의 야생화

  

 

 

 

 

 

 

 

 

 

 

 

 

 

  

 

 

 

 

 

  

 

몸이 가벼우니 자연 기분이 상쾌한 두연이는 꽃사진을 찍느라 지체되는게 영 못마땅한지 자꾸만

빨리 가자며 재촉을 한다. 산행중에 들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날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한 번이라도 더 쉬어주고 싶은 생각에 자꾸만 정상이 아닌 꽃에게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오후 1시 반에 천왕봉에 도착했다.

 

오, 이런!!!

고개들어 올려다본 천왕봉의 하늘은 더없이 푸르건만 지리산은 온통 안개에 휩싸여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잠자리떼만 어지러이 날뿐 30분을 기다렸는데도 좀처럼 산을 에워싼 안개는 걷힐줄을 모른다.

도대체 저 많은 잠자리들은 얼마만큼 높이 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쉽지만...

정말 아쉬웠지만 천왕봉의 운해도 지리의 골짜기골짜기를 바라보는것도 모두 다음을 기약하고 하산했다.

그래도 흔적은 남겨야겠기에 한참을 기다린끝에 정상 표지석 앞에서 사진 한 장은 찍었다.^^

 

 

하산길에...

 

산아래 계곡에서 혼자 놀던 남편은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한다.

매번 전화 할때마다 똑같은 소리,

"아직도 도착 안했다고?  그런데를 나를 데리고 갈라고 했냐, 안따라가길 잘했지..."

 

작년엔 나도 혀를 내두른 코스 백무동-장터목-천왕봉 코스를 함께 다녀온 사람이 1년만에 어찌 이리도 나약해졌단 말인가~

더욱이 운동이랍시고 지성으로 다니면서도 말이지...

 

하산길에...정상에선 이만큼도 안보였다.ㅠ.ㅠ

 

 

하산길에 들르려고 그냥 지나쳤던 법계사에 잠시 들렀다.

이번 지리산행을 중산리에서 시작한것도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1450m) 사찰이라는

법계사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주문 현판이 바닥에...ㅠ.ㅠ

 

 

법계사 삼층석탑(보물제473호)

 

 

 

 

법계사 삼층석탑...

경주 남산 용장사지 삼층석탑처럼 자그마한 탑이 시원스런 조망을 확보한채 오랜 세월을 그자리에 서있다.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커다란 바위위에 탑을 세운 불심에 감탄할 뿐이다.

 

 

 

 

 

★ 대원사 계곡으로...

 

두연이와 내가 산행을 하는 동안 남편은 계곡에서 혼자 놀기도 하고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하고

차안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한다.  정작 산에 오른 두연이와 난 쵸코파이 두 개로 겨우 허기를 면했을

뿐인데 말이지.ㅠ.ㅠ

 

이제 휴가도 마지막 하루를 남겨두고,

계획했던 경주답사와 천왕봉 산행도 모두 마쳤으니 남은건 나의 두 남자에게 원없이 계곡에서 놀게 해주는것.

다시 장소를 옮겨 이번에는 대원사 계곡으로 찾아 들었다.  산청에 있는 대원사 계곡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해질무렵의 대원사에서...

 

 

대원사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마을이 나오고 민박촌이 있다.

마지막날이 되면 아이스박스에 있는 식재료들도 거의 바닥이 드러나다보니 저녁식사를 민박집에서

사먹기로 했다.  두연이와 난 오리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민박집 메뉴엔 오리는 없고 닭만 있다.

 

닭은 전날에 고아 먹었으니 또 먹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점심을 쵸코파이 두개로 떼웠는데

저녁을 비빔밥으로 먹을수도 없고 하다보니 처음부터 남편이 고른 메뉴 메기매운탕을 시키기로 했다.

남편에게 경상도식 메기매운탕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매운탕일지는 의심할 필요가 있음을 미리 귀띔하면서...

 

아니나다를까...

40여분을 기다린끝에 식사가 올라왔는데 남편은 매운탕을 바라만보고 있다.

전라도식 메기매운탕은 무우청 시래기 듬뿍 넣고 들깨도 듬뿍 갈아넣고 매기살이 으스러질 정도로

푹 고아서 나오는데 경상도식 메기매운탕은 매기와 함께 무우와 호박 양파를 썰어넣고 무슨 메기국처럼 끓였다.

 

암튼 전라도 사람 입맛 까다로운건 어딜가나 유명하다는건 나도 인정하는 바이고,

그렇다고 이미 시킨 음식을, 그것도 경상도에서 시킨 음식을 전라도식으로 안했다고 물릴수도 없는일,

차 트렁크속에 들어있는 부루스타 꺼내오고 반찬으로 나온 김치 몽땅 집어 넣고 된장 한 숟갈 더 넣고 아래층에

내려가 들깨가루 듬뿍 얻어다가 팍팍 넣고 한참을 보글보글 끓였더니 맛이 기가막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두연이도 밥을 두 공기나 먹고 남편도 역시 두 공기를 먹고 나는 마지막 한 방울의 국물까지

싹싹 긁어 먹었으니 나의 현명함에 또 다시 감탄해마지 않을수 없다.^^

 

 

 

 

무거운 몸으로 산행을 해서인지 여느날보다 많이 피곤했다.

9시 뉴스가 막 시작될 즈음에 잠이 든것 같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 날 내려다보고 있는듯한 느낌에 눈을 떴다.

 

'어머나 세상에! '

열린 창너머로 달님이 환하게 떠서 날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잠이 깨느냐고 핀잔을 주면서 말이다.

 

아...

달님이시여...

자다말고 날더러 노래를 부르란 말인가요...

 

지리산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달님의 희롱을 받아내느라 밤이 깊어가는줄도 모르고 피곤한줄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었다.^^

 

 

집으로...

 

늦잠이 들었던탓에 날이 새는줄도 모르고 자는데 남편이 흔들어 깨운다.

얼른 준비하고 다른곳에 가서 놀다가 집에가자고 한다.

 

사실 전날 해질무렵에 대원사 계곡을 대충 탐방한 우리 셋은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음날엔 칠선계곡에 가서 놀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다른날은 아침마다 밥해놓고 두 남자 깨우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제 놀기만 하면 되는 마지막날에 그 어느때보다 일찍 일어나서 서두르냐 말이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어 칠선계곡을 찾아 나서는 길...

다랭이논의 초록벼에 내려앉은 아침햇살이 그야말로 찬란하기 그지없다.

 

산청에서 함양 가는길엔 지리산 뿐만아니라 많은 산자락마다 천수답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살아온 우리네 민초들의 삶이 고스란히 산천 곳곳에 배어 있음이다.

깊은산 골속골속 아침햇살은 고루고루 축복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는 칠선계곡은 아직도 일부분만 개방이 된 상태이다.

그렇다보니 산골 오지마을인 추성마을 곳곳엔 칠선계곡을 전면 개방할것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중산리에도 천왕봉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할것을 주장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어 마음속으로 '그건 절대 안돼'

하고 외치고 왔었다.

 

오랜 세월 산이 주는 혜택과 함께 조용히 살아왔을 오지 주민들도 이제는 북적이는 관객들과 그 혜택을

공유하면서 관광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절박한 요구인지 몰라도 그로 인한 환경의 훼손과 파괴를

먼저 생각했으면 하는게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램 아닐까 싶다.

 

매표소에서 계곡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용소가 있다기에 가보니 물이 시퍼렇다 못해 검기까지 해서

무섬증이 들 정도였다.  마침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아저씨가 있어 폭포를 보려면 얼마나 더 가야하느냐고

물었더니 5km 가까이 올라가야 된다고 한다.

 

또 다시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꾸욱 누르고 용소에서 다시 발을 돌려 나오다가 그만 바위에서 미끄러져

하마터면 시퍼런 물속에 풍덩 빠질뻔 했다.  넘어지면서 충격이 심했던지 지금도 왼쪽 다리를 절뚝거린다.

물론 두연이와 남편에게는 비밀이다.^^

 

오늘 아침 식사를 하면서 두연이에게 이번 휴가에서 어떤게 가장 좋았느냐고 물었다.

 

" 당연히 천왕봉 정상에서 맛본 소름돋는 바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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