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계룡산에서 나홀로 떠는 수다

연이♥ 2007. 9. 9. 18:32

 

 

 

 

아침하늘이 너무나 멋진 날이다.

특별한 계획이 없이 맞은 휴일아침의 하늘이 갑작스런 산행 계획을 세우게 만들었다.

 

서둘러 아침을 짓고 남편을 깨워 출근을 시키고나니 버스시간 맞추기가 촉박하다.

어차피 모자 눌러 쓸테니 머리 감는걸 생략하기로 하고 서둘러 초간단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섰다.

 

8시에 출발하는 유성행 표를 끊고 냅다 뛰어서 직행버스에 오르자마자 버스가 출발한다.

8시차 다음엔 9시 40분으로 훌쩍 뛰어넘기에 택시를 탈까말까 망서린 끝에 시내버스를 탔는데

용케도 직행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난 스릴을 너무 즐기는것 같다.ㅎ

 

<리진>...

소설을 읽는내내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음에 못내 불만이었는데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어린시절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강연의 사랑에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 한 방울 뚝 떨구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것도 아닌 느닷없이 한 방울의 눈물이 뚝 하고 떨어져 버리는 바람에

당황한 나는 유성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목에 두르고 있던 손수건을 급히 풀어 눈물을 닦는 헤프닝을 벌이고 말았다. 

 

창밖을 보니 들판의 벼들이 꼭 그만큼,

초가을 햇살만큼의 빛깔을 띠고 모처럼의 햇살에 즐거워하고 있다.

 

 

 

동학사 주차장 - 큰배재 - 남매탑 - 삼불봉 - 관음봉 - 은선폭포 - 동학사 (9.5km, 산행시간:3시간 30분)

 

 

 

오늘 산행의 포인트는 은선폭포다.

최근 열흘 이상 내린 비로 폭포에 물이 제법 많이 내릴거란 기대를 잔뜩 가지고 시작한 산행이다.

그렇다보니 코스를 잡으면서 폭포를 먼저 봐야할지 남매탑을 먼저 봐야할지 잠시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물이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는걸 보려면 폭포를 먼저 가야겠지만 은선폭포를 지나면서부터는 너덜바위 지대가

나오는데 경사가 심해 오르기가 장난이 아니어서 대개는 하산코스로 잡는 곳이다.

 

그래 좋다!

남매탑 먼저 만나자!

 

 

 

 

 

 

등산로 초입에서부터 온갖 꽃들이 안녕안녕 인사를 하는 바람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도 인사를 했다.

 

- 안녕~ 그러고보니 물봉선 그대는 올여름에 처음보네, 이구 미안, 벌써 끝물이구나?

- 칡꽃 안녕~ 그대도 막바지 꽃을 피우느라 분주하네?

- 며느리 밥풀꽃도 안녕~ 지리산에서 실컷 봤었지?

 

 

 

 

 

 

오늘따라 몸이 왜이리 가볍지?

오랜 가을장마가 끝나고 제법 선선해진 날씨다보니 계룡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꽤 많다.

나홀로 산행인데 북적거리는 인파속에 묻혀 걷는게 싫어서 속도를 내서 걸었다.

 

훗~

내가 좀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을 누비고 다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식피식 웃어가며

앞서가는 이들을 따라잡다보니 어느 순간 등산로가 텅 비어 한적해진다.  누구 나한테 계룡산 다람쥐라고 불러주는이 없을까?

아무렴 나처럼 커다란 다람쥐가 있을까만...^^

 

 

 

 

 

 

첫 만남은 늘 설레게 마련이다.

나는 탑을 만나러 갈때 맨 처음 눈에 띄는 모습을 참 좋아한다.

정림사지 탑을 처음 만나러 갈때도 그랬고, 자주 만나는 왕궁탑도 그렇고,

남매탑 역시 땀 흘리며 산행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때 살짝 보이는 탑의 모습을 정말 좋아한다.

 

 

 

청량사탑(남매탑)

나란히 함께 있어 정겹고,

소박하지만 정성이 느껴지고 전설이 있어 아름다운 탑

 

 

 

오늘 계룡산은 파랑이다.

적당히 푸른 하늘과 두둥실 흘러가는 뭉게구름 그리고 살짝 걷히지 않은 안개가 어우러져 산이 푸른빛을 띤다.

 

 

 

- 아저씨, 여기 자주 오시죠?  지난번 산행때도 하모니카 연주 들었던것 같아요.

- 저는 매주 옵니다.

-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 아이구, 내 사진이 인터넷에 마구 돌아다녀요.

- 한 장 찍게 하모니카 불어주세요.

 

하모니카 아저씨가 부는 섬마을 선생님, 오빠 생각, Top of the world를 들으며 자연성능을 걷는다.

아, 오늘따라 바람은 또 왜이리 시원한거야.

It's a beautiful day!

 

 

 

  

 

 

 

 

삼불봉에서 관음봉에 이르는 자연성능 구간에는 바위틈에 자라는 소나무가 참 많다.

그 가운데 늘 내 카메라에 담기는 소나무가 두 그루 있다.

아무래도 다음번 산행땐 이름표 하나 달아줘야 겠다.^^

 

 

관음봉에서 바라본 자연성능

 

 

 

 

 

 

 

은선폭포에서 관음봉에 이르는 너덜바위 지대는 오르는 코스로 잡으면 반드시 후회한다.

바람 한 점 없고 갈지자로 살짝씩 비틀어 놓긴 했어도 경사가 어찌나 심한지 하늘은 바로 위에 있지만

좀처럼 고갯길이 나타나지 않는 계룡산 최악의 코스다.  

 

올라오는 이들의 힘겨워 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여유만만한 미소를 머금고 내려오다 보면 가끔씩

얼마나 더 가야 되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때면 나는 거리와는 상관없이 늘 같은 대답을 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예요, 올라갈수록 더 힘들어 집니다!" ㅎㅎㅎ 

 

 

 

 

은선폭포다.

오랜만이네~

흠...은선폭포는 비가 억수로 퍼붓는 순간이 아니고선 내가 기대하는 물줄기는 보기 힘들거란 생각이 든다.

그 길이가 너무 길기도 하고 바위가 많은 산이다보니 왜 안그러겠어.ㅠ.ㅠ

 

 

 

동학사는 웬만해선 잘 들어가지 않는 절집중 하나다.

마당도 없고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다보니 딱히 마음 줄곳이 없다.

 

 

 그나마 동학사에서 볼거리라면 대웅전 문살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시간이 애매하다보니 동학사에서 유성까지는 결국 택시를 타야했다.ㅠ.ㅠ

직행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나보다.  어디선가 꿈결처럼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질수 있어. 이제와 주저앉아 있을수는 없어..."

 

눈을 감은채로 노래를 마저 듣는데 럼피우스 부인 생각이 난다...

노래가 끝난후 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버스는 막 익산 나들목을 들어서고 있었다.

정말 꿀같은 잠을 잤다.^^

 

오랜만에 나홀로 계룡산에서 실컷 수다를 풀고 왔다.^^

 

  
 
 
It's a beautiful day / Sarah Brigh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