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영화

장미의 계절

연이♥ 2014. 5. 22. 14:55

 

 

 그날 후로, 첫 번째 성을 가로지르는 일은 우리에게 있어 토요일의 축제가 됐다.

수위는 우리에게 정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러면 블라디미르가 불쑥 나타나 우리의 짐을 빼앗곤 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대령에게 인사하기 위해 성까지 가곤 했다. 그는 우리에게 감초로 만든 과자를 주어

우리가 여러 차례 맛보도록 해주었다. 아버지는 어느날 그에게 고물상에서 찾아낸(당연히 너덜너덜해진) 책 한 권을 가지고 갔다.

그 각 장들은 <라이슈호펜> 전투에 대한 완전한 이야기를 여러가지 삽화와 지도로 함께 설명하고 있었다.

대령의 이름이 적절한 자리에 실려 있었고, 스스로 반군국주의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작가가 <제1기병대>의 용맹을

찬양하고 있는 페이지를 세 가지 종류의 색연필을 오랫동안 깎아서 삼색의 테두리로 둘러 놓았다.

 

 이 옛 군인은 역사가의 이야기를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라(역사가는 말안장 위에도 앉아본 적이 없는 민간인이다)

그가 곧 진리를 밝히기 위해 연구보고의 편집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 책에 더욱 흥미를 가졌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자신의 정원을 통해 우리와 동행하면서 지나는길에 붉고 큰 장미 한 다발을 꺾곤 했는데,

그 장미는 그가 새로 종을 개발해내어 <로이의 장미>라고 이름 붙인 것이었다. 그는 작은 은색 가위로 장미의 가시를 잘라내어,

우리가 떠나는 순간 엄마에게 그 꽃들을 주곤했고, 엄마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그 꽃을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고 월요일 아침마다 마을로 가져가곤 했다.

1주일 동안, 그 꽃들은 식탁 한구석에 있는 하얀 점토로 만든 꽃병의 가장자리에 꽂힌 채 조그만 원탁 위에서 반짝거렸다.

공화주의적인 우리집은 로이 장미에 의해 귀족적이 된 것 같았다...

 

                                  .. 마르셀 빠뇰 지음/ 구석영 옮김/ <마르셀의 추억> 중에서..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극작가 마르셀 빠뇰의 <마르셀의 여름>과 <마르셀의 추억>은,

어린시절 프로방스 언덕위의 별장에서 보냈던 즐거운 한때를 유쾌하게 그려낸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시골 별장까지 가는 길은 전차에서 내려 온갖 짐을 이고지고서 걷고 또 걸어야하는 머나먼 여정이다.

하지만 여름방학 한 달 동안 별장에서 보낸 마르셀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별장에서 보낸 휴가의 달콤한 기억을 잊을수가 없다.

고심 끝에 별장에서 먹고자는데 필요한 짐을 들고서(막내동생이 어려 마르셀의 엄마는 아이까지 안고서) 세 시간 가까이 걸어야 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기로 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별장행을 감행하게 된다.

 

  그런 그들 가족에게 어느날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제자 부지그가 구세주처럼 등장한다.

부지그는 별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운하의 감독관으로 마르셀 가족에게 별장까지 가는 지름길을 알려준다.

문제는 지름길이 대저택 네 곳의 사유지를 지나가야 한다는 것.

교육자로서의 양심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던 아버지는 결국 부지그에게서 운하를 따라 사유지를 통과하는 네 개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꾸러미를 받아들고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세 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을 25분만에 지나갈 수 있으니 양심 할아버지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첫 번째 저택은 정원과 망루가 있는 성으로 둘러싸인 <귀족의 성>으로, 소작인 1명과 관리인 1명을 데리고 사는 백작이 주인이다.

두 번째 저택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성으로 덧문들은 늘 닫혀있고 매번 지날때마다 아무도 만난적이 없다.

세 번째 저택은 <공증인의 성>으로 소나무 정원과 정사각형의 거대한 건물이 있다. 그곳의 문도 8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닫혀 있다.

마지막 네 번째 저택은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성으로 소유주는 파리에 살고 있으며 퇴역 군인이 관리하는데 관리인은 언제나 취해 있고

커다란 개를 데리고 있어 마르셀 가족은 네 번째 문앞에 설때마다 항상 두려움에 떨곤 한다.

 

 곪은 상처는 짜내야 낫듯이 불안도 그와 비슷한 것이어서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떨쳐낼수 없다.

그처럼 불안불안하게 통과하던 마지막 성의 험상궂은 관리인과 어느날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는데,

마르셀의 아버지는 운하관리인만 드나들 수 있는 열쇠꾸러미마저 빼앗긴채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건 물론이고

관리인으로부터 고발을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구세주같은 제자 부지그에 의해 반전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된다.

 

  세월이 흘러 마르세이유에 영화사를 차려 크게 성공한 마르셀은 프로방스에 시네마타운을 차리기 위해

땅을 매입할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부동산 업자로부터 좋은 위치의 땅이 나왔다는 말을 전화로 전해 듣고

땅을 직접 보지도 않고 사게 된다. 나중에 땅을 보러간 마르셀은 숨이 멎을만큼 놀라는데 그곳이 바로 그의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가슴아픈(네 번째 성의 관리인 때문에 마르셀의 어머니가 기절까지 했었다. 마르셀의 어머니는

그로부터 5년 후에 돌아가시고 별장이 있던 곳에서 사귄 절친 릴리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한다.) 추억이 오롯이

담겨있는 별장이 있는 마을이었던 것이다.  

 

 

 

  오래전에 <마르셀의 여름>과 <마르셀의 추억>을 처음 읽었을때 내게 가장 긴 여운을 남긴 어머니의 장미꽃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빛이 바래지 않고 있다.

<마르셀의 여름>과 <마르셀의 추억>은 아무리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의 에피소드 일지라도 리듬을 타듯 경쾌하게 읽을수 있음이 매력이다.

극작가인 마르셀 빠뇰의 문장이 주는 힘이라 할 수 있겠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마농의 샘> 역시 그렇다.

 

<마르셀의 여름> <마르셀의 추억> 두 권의 책과 두 편의 영화 모두 강추합니다^^

 

 

출근길 버스정류장 가는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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