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영화

파블로 네루다 / 일 포스티노

연이♥ 2013. 11. 9. 09:15

 

 

이곳저곳을 떠돌며 망명 생활을 하던 중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나라에 발을 딛게 되었다.

이제는 열렬히 사랑하게 된 이 나라는 바로 이탈리아다. 나는 보는 것마다 찬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올리브유,빵,포도주에서 이탈리아인의 질박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경찰이 내 앞에 나타날때 까지는 그랬다.

경찰에게 불려가거나 조사를 받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어느 곳을 가나 경찰을 만났다.

심지어는 꿈에서도 나타났고, 스프 그릇 안에서도 어른거렸다....

 

 그때 카프리 섬에서 보낸 전보를 받았다. 발신자는 유명한 역사가 에드윈 체리오였는데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었다.

체리오는 전보에서 이탈리아 전통과 문화를 무시한 정부의 처사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말미에 카프리 섬의 별장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마틸데 우루티아와 함께 카프리 섬에 도착한 후에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아름다운 카프리 섬에 도착했을 때는 겨울밤이었다.

어둠속에서 높다랗게 치솟은 하얀 해안이 보였다. 낯설고 적막한 해안이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무슨 일을 겪게 될까? 작은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는 인적이 끊긴 밤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묵묵히 서 있는 하얀 집들과 급경사의 좁은 골목길, 마침내 마차가 멎었다.

마부가 우리 짐을 집 앞에 내려놓았다.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하얗고 텅 빈 듯한 집이었다....

 

 나와 마틸데는 오붓한 생활을 즐겼다.

우리는 긴 산책로를 따라서 섬 서쪽의 아나카프리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수많은 과수원으로 나누어진 이 작은 섬의 눈부신 풍광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들 얘기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태양과 바람이 가장 많이 부딪치는 바위틈 메마른 흙에서 옹기종기 솟아난 작은 식물과 꽃은 정원사가 공을 들여 가꾸어 놓은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카프리 섬의 진짜 비경은 오랫동안 이 섬을 돌아다녀 보고, 관광객이라는 딱지가 떨어진 후에나 눈앞에 나타난다. 

암석과 자그마한 포도밭이 가득한, 소박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서민들이 살아가는 카프리 섬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도 남는다.

이쯤에 이르면 외부인도 이곳 사물과 사람들에게 동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부와 어시장 아낙네들이 알은체 인사를 하며, 자신도 카프리 섬의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면 좋은 포도주를 구할 수 있고, 어느 곳에 가면 카프리의 원주민들이 먹는 올리브를 살 수 있는지 알게 된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중에서..

 

 

 

빌려온사진(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는 전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칠레의 민중시인 네루다가

마지막 망명생활을 했던 이탈리아 작은섬에서의 소박한 인연을 아름다운 지중해의 풍광과 함께 보여준다.

 

늙은 아버지와 함께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청년 마리오에게 새 일자리가 생기는데,

시인 네루다에게 전세계에서 날아드는 팬레터를 배달하는 일이다. 

오직 네루다 한 사람만을 위한 우체부인 셈이다.

 

마리오는 자전거에 편지 가방을 메달고 네루다가 머물고 있는 언덕 위의 하얀집을 오가면서 

네루다를 통해 은유의 세계를 만나 시를 이해하게 되고 시를 통해 달라진 세상을 보게 되고 사랑에도 눈을 뜨게 된다.

 

안타깝게도 마리오 역의 마시모 트레이시는 마지막 촬영을 끝낸 다음날 지병인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영화에서도 병색이 완연해 보이는데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였던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보고 오랜 시간 여운이 남았던 것처럼,

지난 여름 뒤늦게 만난 영화 '일 포스티노' 역시 꽤 오랫동안 잔잔한 여운으로 남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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