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영화

빈센트 반 고흐

연이♥ 2011. 11. 8. 21:54

 

 

 

 

1883년 3월 11일

종종 나 자신이 엄청난 부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단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만의 일을 찾았기 때문이야(어쩌면 지금 이 순간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 마음과 영혼을 바칠 수 있고 삶에 의미와 영감을 주는 그런 일 말이다.

 

물론 기분은 때에 따라 변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얻었단다.

예술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있어.

예술이란 인간을 항구로 실어가는 강력한 조류 같은 것이라는 어떤 확신이야.

물론 인간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사람이 자신의 일을 찾는다는 건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나 역시 불행한 인간은 아니지.

 

그러니 내가 어떤 큰 시련에 처하거나 삶에 어두운 날들이 닥친다 해도 불행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싶지는 않단다.

실제로 난 그런 불행한 사람도 아니니까.

 

 

 

 

1883년 4월

생일을 축하해줘서 고맙구나.

삽질하는 사람을 그리기 위해 좋은 모델을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한 명을 구하게 되어 정말 좋은 하루를 보냈단다.

 

네게 장담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일이 점점 더 즐거워진다는 거야.

그 때문에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더 큰 내면의 온기가 느껴진단다.

그래서 또 널 생각하게돼.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건 네 덕분이니까.

어떤 치명적인 방해물, 즉 직접적인 속박없이 말이다.

때론 난관이 자극이 되기도 하지.

이제 일에 더 큰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가 왔단다.

 

나의 이상은 더 많은 모델들과 함께 일하는 거야.

날씨가 춥거나 일거리가 없거나 배가 고픈날, 내 아틀리에가 이 불쌍한 사람들 모두에게 피난처가 되어 줄 수 있었으면 해.

이곳에 오면 온기와 먹고 마실 것이 있고 돈도 몇 푼 벌 수 있다는걸 알기 때문이지.

지금은 이 일이 아주 작은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더 확대되기를 바란단다.

 

 

 

 

1883년 10월 13일

오늘 감자밭을 파 엎는 남자들의 뒤를 따라 걸었단다.

여자들이 그 뒤를 따라가며 남은 감자들을 주워 모았지.

 

이건 내가 어제 너를 위해 스케치한 밭과는 아주 다른 밭이야.

그런데 여기서 묘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단다.

늘 똑같은 밭인데도,

같은 소재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대가들의 경우처럼 다양한 모습을 띤다는 사실이야.

죽 같은 소재라도 그림이 다르다는 말이지.

아, 이곳은 무척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아주 특별한 곳이란다.

'평화'라는 말밖에는 더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곳이지.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원하느냐 하는 거야.

일종의 내면의 혁신을 시도한다고나 할까.

고정관념을 결연히 떨쳐버리는 거란다.

괜찮겠지.

우린 해낼 수 있을 거야!

 

 

 

1884년 6월초

지난번 편지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실 잣는 여자 외에도 건장한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싶단다.

이것이 대략적인 스케치야.

네가 이곳에 왔을 때 본 습작 두 점을 기억하는지 모르겠구나.

내아틀리에의 구석진 같은 자리에 세워져 있었지.

 

색채의 법칙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놀랍단다.

우발성이 완전히 배제되기 때문이야.

오늘날 더 이상 임의적인 기적을 믿지 않게 되고,

변덕스럽게 제멋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신도 믿을 수 없게 된 것과 같은 이치야.

대신 우리는 자연에 대한 더 큰 존경과 신뢰, 감탄의 마음을 갖게 되었지.

마찬가지 이유로 예술에 있어서도 타고난 천재나 영감 같은 구식 개념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주도면밀한 관찰과 확인을 통해 이것들을 크게 바꾸어놓아야 할 거야.

그렇다고 내가 천재의 존재나 그 천부적인 면을 부정한다는 말은 아니야.

요컨대 이론과 교육은 본질적으로 항상 무용하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지.

 

바로 이런 생각으로 실 잣는 여자와 실을 감는 노인을 그렸단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노력할 거야.

이 두 점의 사생화 습작을 그리면서 지금까지 다른 습작들에서 그랬던 것보다 좀 더 나 자신이 된 듯한 느낌이었어.

몇몇 데생을 그리면서 그런 느낌을 가졌던 걸 제외하면 말이지.

 

 

 

 

1885년 4월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리느라 여념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

두상 채색화 습작을 또 몇 점 그렸지.

특별히 손들의 모습이 많이 변했단다.

 

무엇보다 그림 안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감자 먹는 사람들'속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확신하기 전에는 이 그림을 네게 보내지 않을 거야.

어쨌거나 진전되고 있고, 지금까지 네가 보아온 내 그림들과는 아주 다른 무언가가 있단다.

그 점만은 분명해. 특별히 표현하고 싶은 건 '생명'이야.

기억을 더듬으며 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

하지만 이 두상들을 내가 수도 없이 그렸다는 사실을 너는 알지!

게다가 몇 가지 사항들은 현장에서 직접 그리기 위해 밤마다 그곳에 가곤 한단다.

 

 

1885년 5월초

<감자 먹는 사람들>은 아주 어두운 그림이야.

요컨대 흰색을 표현하는데 흰색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단다.

빨강,파랑,노랑을 섞어 얻게 되는 중간색, 즉 주홍,감청,나폴리옐로 등이 사용되었지.

중간색은 본래 아주 짙은 회색인데, 그림에서는 흰색으로 떠오른단다.

 

내가 왜 그렇게 그렸는지 말해줄게.

그림의 소재는 작은 램프 불이 비추는 회색 내부야.

회색 리넨 식탁보와 연기로 그을린 벽들, 여자들이 밭에서 일할 때 쓰는 흙 묻은 모자들이 있지.

속눈썹 사이로 보면 램프의 불빛 속에서 이 모두가 훨씬 짙은 회색으로 보여.

램프의 불빛은 불그레한 노랑이지만 앞서 말한 흰색보다 훨씬 밝게 보인단다.

 

그러면 살의 색에 대해 말해보자.

피상적인 눈으로 보면(깊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살색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지.

그러나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살의 색을 표현하기 위해 노란 황토, 붉은 황토, 흰색을 사용했단다.

한데 이 색깔들은 너무 밝아서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아니? 인물의 두상을 정성껏 완성한 뒤 빠른 터치로 가차없이 그 위에 덧칠을 했지.

그러자 흙이 묻은 싱싱한 감자, 물론 껍질을 벗기지 않은 감자와 흡사한 색이 되더군.

 

그러면서 사람들이 밀레의 그림 속 농부들을 두고 하는 말을 생각했어.

"그의 농부들은 자신들이 씨를 뿌린 흙으로 그려진 것 같다"는.

정당한 평가야. 그들이 집 안팎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말이 저절로 떠올랐단다.

........................

 

 

 

 

1889년 9월 5일 혹은 6일

지금은 내 자신의 초상화 두 점을 -다른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그리고 있단다.

이제야말로 인물화 작업을 좀 해두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야.

그중 하나는 병상에서 일어난 첫 날 그리기 시작했어.

마르고 유령처럼 창백한 모습이었지.

보라빛이 도는 짙은 청색 톤이 주를 이루고, 노란 머리털에 두상이 희릅스름한 채색화 습작이야.

 

그 다음은 밝은 바탕에 그려진 4분의 3길이의 습작이지.

그밖에도 올 여름에 그린 습작들을 다듬고 있단다.

실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 있어.

 

그림을 그리다 피곤해지면 틈틈이 조금씩 이 편지를 쓰고 있단다.

작업은 아주 잘 진행되고 있어.

 

 

 

 

 1890년 4월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졌단다.

최근에 그린 꽃 핀 나뭇가지는 아마도 내 그림 가운데 가장 공들여 그린 그림일 거야.

아주 차분한 상태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터치로 그린 그림이야.

그런데 다음 날 난 완전히 눕고 말았지.

이런 일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슬프게도 현실이 그렇단다.

 

1890년 4월 30일

아몬드 꽃을 그리는 동안 병이 났었지.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면 꽃 핀 나무들을 좀 더 많이 그릴 수 있었을텐데 아쉽구나.

이제 꽃들이 모두 지고 말았으니, 난 정말 운이 없는거야.

 

반 고흐는 1889년 12월과 1890년 1월에(당시에는 간질로 진단받은) 심각한 발작을 일으키지만 겨울 내내 작업을 계속한다.

그리고 브뤼셀에서 열린 그룹 전시회에도 더 많은 그림을 출품해 비평가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는다.

누군가 이 그림들 중 한 점을 구입하기까지 하는데, 이것은 고흐가 살아 있는 동안 처음으로 팔린 작품이었다.

 

1890년 1월 말에 테오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그들은 아이에게 빈센트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고흐는 이것을 몹시 자랑스럽게 생각해 자신과 이름이 같은 조카를 위해 꽃 핀 아몬드나무 가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기쁨중에도 고흐는 2월말 또 한 차례 발작을 일으켜 4월 말까지 회복되지 못한다.

 

5월말에는 다시 거처를 북쪽으로 옮겨 북쪽 지방에 위치한 오베르로 가는데, 가는 도중에 파리에 들러 제수와 조카를 만난다. 

오베르에서는 예술가들의 신경 질환을 연구해온 동종요법 외과의사인 폴 가셰의 치료를 받는다.

아마추어 화가였던 가셰와 고흐는 긴밀한 우정을 쌓아간다. 

몇 차례 발작을 더 겪는 와중에도 고흐는 의사의 치료를 잘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예술에 대한 고흐의 헌신은 여전했는데, 이것은 보다 큰 화폭의 몇몇 새로운 작품에서 드러난다.

 

동생에게 보내는 고흐의 마지막 편지에서 평상시보다 심한 우울증의 기미는 발견하기 어려우며,

심지어는 늘 그렇듯 그림에 필요한 도구들을 더 보내달라는 요청까지 읽을 수 있다.

하지만 7월 27일, 그는 밀밭에서 그림을 그리다 말고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쏜다.

이 소식을 듣고 테오가 달려오지만 이틀 뒤 고흐는 숨을 거둔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상심한 테오 역시 같은 해 자리에 눕게 되어 이듬해 1월에 네덜란드에서 사망한다. 

 

 

                                        ... <Vincent Van Gogh> 중에서 발췌...

                         빈센트 반 고흐 지음/H.안나 수 엮음/이창실 옮김/생각의 나무 펴냄

 

 

 

 

 

지독한 가난과 고독과 외로움과 좌절을 모두 녹여 자신만의 색채와 그림으로 승화시킨 빈센트 반 고흐...

 

올해로 두 번째 수능을 치르는 두연군에게 <빈센트 반 고흐>를 선물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좋아하는 고흐 그림은 아이리스나 해바라기가 그려진 꽃그림과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의 별과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그림들이다.

그중에서도 아몬드꽃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

표지 전체가 아몬드꽃 그림으로 뒤덮인 책을 보는 순간 도저히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녕, 두연군에게 사주고 싶어 산건지 내가 갖고 싶어 산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ㅋ

 

그림에 소질이 있는 두연군,

아직은 수능전이어서 그림만 살짝 훑어보더니 감탄에 감탄을 연발한다.

고흐, 그림 정말 잘 그리는 화가라며...

자기도 그림이나 그릴걸 그랬나보다며 그림에 대한 향수가 간절해지는 눈치다.

 

고흐의 편지글을 읽을때면 언제나 가슴 한 쪽이 아려오지만,

그림을 보며 즐거워하는 두연군을 보니 한편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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