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영화

사람사는 세상

연이♥ 2011. 7. 2. 22:34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는 그가 정치인생 내내 사용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란 말속에 담겨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가 1988년 제13대 총선에 출마할 때 내건 선거구호였다. 그 후 그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 사는 세상'을 말했다. 사인을 할 때도 '사람 사는 세상'을 썼다. 대통령으로 재임 중에도, 퇴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자신이 대통령을 하고 있을 때조차 이 세상은 아직 '사람 사는 세상'과 거리가 멀어서, 그 구호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요즘말로 하면 '복지국가의 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더 넓은 뜻이다. 경제적 복지를 넘어서서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누구나 똑같이 존엄한 세상을 뜻한다. 역시 그 토대는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 여생을 바쳐 연구하고자 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것도 결국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였다. 정치에 처음 입문할때 초심이 대통령에서 퇴임한 후까지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노무현재단>의 목적은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다.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토양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바로 <노무현재단>의 목적이다.

 

 나는 '복지'라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어릴 때의 기억이 하나 있다. 결코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다.

중학교 1학년 여름, 어느 일요일 새벽에 어머니가 나를 깨우셨다. 부산역에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나섰다. 버스도 다니기 전의 이른 새벽, 아직 캄캄할 때여서 부산역까지 걸어갔다. 어린나이에 걷기엔 먼 거리였다. 아마 6~7km 또는 7~8km 정도 됐을 것이다. 가면서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일요일 서울 가는 특급열차(그때는 '특급'이 최고였다) 차표가 귀하니 그 차표를 사뒀다가 표를 못 산 승객에게 웃돈을 얹어 팔면 벌이가 좀 된다는 말을 아는 사람에게서 들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차표 암표장사였다. 부산역에 도착했는데 그때까지도 표를 팔지 않아 기다렸다. 막상 표를 팔기 시작했는데도 어머니는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표를 사지 않은 채 그냥 돌아가자고 했다.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침식사 시간을 넘긴 때여서 무척 배가 고팠다. 집 근처 아는 사람이 하는 가게에 와서야 토마토를 몇 개 사서 겨우 요기를 했다. 그때 어머니가 왜 그냥 돌아왔는지 모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머니도 그 후 다시는 암표장사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 일은 식구들 사이에서도 어머니와 나만 아는 일이다. 모자간에도 그 일을 입에서 꺼내본 적이 없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어머니에게 여쭤봤다. 그때 왜 그냥 오셨나교. "듣던 거 하고 다르데" 라는게 어머니의 답이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 일이라는 게 벌이가 좀 된다고 소문나면 늘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거나 단속을 받게 되면서, 처음 얘기 들었을 상황과는 같지 않은 법이다. 아니면 어린 아들과 함께 하기에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때 우리 모자 생각이 난다. 물론 우리는 이제 어렵지 않다. 함께 피난 와서 고생했던 친척들도 지금은 대체로 괜찮아졌다. 부모들이 악착같은 교육열로 자식들 공부를 잘 시킨 덕분이다. 그러나 지금도 지난날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과거 어려웠던 시기를 견뎌내는데 많은 도움이 있었다. 성당의 구호물자 배급이 있었고, 학교급식이 있었다. 나와 형제들은 장학금 도움도 꽤 받았다. 독지가들이 출연한 장학금도 있었고, 함경남도 도민회나 흥남시민회 장학금도 있었다. 누나는 5.16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복지이다. 그 시절 국가가 가난해서 복지기능을 제대로 못하니, 민간이 나서서 어려운 사람을 도왔던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운 시기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피난이 원인이었지만 실업,질병,사고,육아,노령 등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국가가 도와주면 어려움을 견뎌내고,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복지국가이다.

 

 어릴 적 가난의 기억은 살아가면서 그대로 인생의 교훈이 됐다. 더 이상 가난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잘 살고 싶지도 않았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받았던 도움처럼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자라서 학생운동을 하게 된 것도, 인권변호사가 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굴곡이 많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돌아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한가운데에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더 어렵게 자랐고 대학도 갈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나보다 훨씬 뜨거웠고, 돕는 것도 훨씬 치열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 <문재인의 운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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