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영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연이♥ 2010. 4. 1. 11:20

 

 

 우리 라코타 족 인디언들에게는 모든 생명체가 인격을 갖추고 있었다. 오직 모습만 우리와 다를 뿐이었다. 모든 존재들 속에 지혜가 전수되어 왔다. 세상은 거대한

도서관이었으며, 그 속의 책들이란 돌과 나뭇잎, 풀, 실개천, 새와 들짐승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지의 성난 바람과 부드러운 축복을 나눠가졌다. 자

연의 학생만이 배울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배웠으며,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이었다. 우리는 결코 폭풍이나 난폭한 바람, 차가운 서리와 폭설에 악담을 퍼

붓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이 우리 앞에 닥쳐오든지 우리는 필요하다면 더 많은 노력과 힘으로 우리 자

신을 적응시켰다.

 

 번개조차도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것이 가까이 올 때마다 모든 천막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모닥불 속에 삼나무 이파리를 던졌으며, 그 마술의

힘이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켰다. 밝은 날과 어두운 날은 둘 다 위대한 신비의 표현이며, 우리 인디언 부족은 위대한 신비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기뻐했다.

 

 오직 얼굴 흰 사람들의 눈에만 자연이 '야생'으로 보인다. 오직 그들에게만 이 대지가 야생 동물들과 야만인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는 곳으로 여겨진다. 우리 인디언

들에게 자연은 길들여져 있는 온순한 것이었다.  대지는 기름지고, 우리는 위대한 신비가 내려주는 가득한 축복 속에 있었다.  동쪽으로부터 털 많은 사람들이 와서

광기어린 잔인함으로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수많은 불의를 저질렀을 때, 우리들에겐 그것이야말로 야만적인 일이었다. 얼굴 흰 사람들이 다가가

자 동물들은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무법 천지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흙과 하나다.  그곳이 숲이든,평원이든,고원이든,인디언은 그 풍경과 하나다. 왜냐하면 이 대륙을 만든 손이 그곳에 사는 인간도 만들었기 때문

이다. 인디언은 들판의 해바라기처럼 자연스럽게 성장했으며, 들소처럼 자연에 속한 존재였다.

 

 얼굴 흰 사람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메리카 대륙과 인디언 부족의 오랜 역사에 비하면 얼굴 흰 부족이 이 땅에 들어온 것은 불과 하루 이틀의 시

간에 지나지 않는다. 얼굴 흰 사람들의 나무뿌리는 아직 바위와 흙을 움켜쥐지 못했다. 얼굴 흰 사람들은 여전히 떨고 있다. 뜨거운 사막과 낯선 산꼭대기 위에 서 있

던 자신의 조상들의 기억 때문에 몸을 떨고 있다. 유럽에서 이 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아직도 외국인이고 이방인이다.  아직도 그들은 이 대륙을 횡단하려고 길을

묻는 자들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하지만 인디언은 여전히 대지의 혼과 하나가 되어 있다. 다른 종족들이 그 혼의 맥박을 느끼고, 그것을 신성하게 여기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 대지의

사람이 되려면 인간은 그곳에서 탄생과 죽음을 무수히 많이 반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육체가 그들 조상의 뼈와 먼지로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내 앞에 이제 막 삶의 여행을 시작하려는 젊은이가 있어서 내가 그를 위해 내 아버지들이 살았던 자연스런 방식과 문명의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 주어야 한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 젊은이의 발걸음을 내 아버지들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나는 그를 한 사람의 인디언으로 키울 것이다.

 

                                                                               ..서 있는 곰(루터 스탠딩 베어), '말과 침묵' 중에서..

 

 

 

 콜럼부스가  도착했을 때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인구가 얼마였는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1960년대까지의 백인 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백만 명이 고작

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이 지나치게 축소된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유럽 인들이 전염시킨 질병이 원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이

정확히 밝혀지면서  오늘날 인류학자들과 역사가들은 당시 북아메리카의 인구가 적어도  5백만 명은 되었으리라고 추정한다.  이에 대해 아메리카 인디언

역사학 교수인  데분 A.미헤수아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만 명이 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금도 그 숫자는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다.   어쨌든 거북이

섬을 누비고 다니던 그 많던 인디언들이 4세기 뒤인 1910년에는 고작 22만 명이 전부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1492년,  콜럼부스와 그의 선원들은 바다에서 길을 잃고 이질 설사에 걸려 고생하다가 마침내 육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사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대륙이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콜럼부스의 표현을 빌리면,그곳 원주민들은 '피부가 검지도 희지도 않고,

키가 무척 크고 잘 생겼으며,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인도 동쪽에 도착했다고 믿은 그는 그곳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얼마 후 그는 그곳이

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조를 받기위해 본국의 여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인도땅에 도착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렇게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착오와 거짓말로부터 시작되었다.

 

 콜럼부스 일행이 처음 맞닥뜨린 카리브 해의 타이노 족 원주민들은 두 팔 벌려 그들을 환영했다. 집으로 데려가 휴식을 취하게 하고, 음식과 선물을 대접

했다.  뜻밖의 환대를 받은 콜럼부스는 이방인을 친절하게 대접하는 것이 인디언들의 오랜 전통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들이 자신을 신으로 여기고 있다

오해했다. 타이노 족의 친절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콜럼부스는 첫 도착 후 페르디난도 왕과 이사벨라 여왕 앞에 전시하기 위해 인디언 10명을 붙잡아 스페인으로 보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5백 명의 인디

들을 노예로 팔기 위해 배에 실어 보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항해 도중에 병으로 죽었다. 그것이 종족 말살의 신호탄이었다.

 

 1493년 콜럼부스는 17척의 배에 무기와 병사들을 가득 싣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람을 붙잡아 노예로 파는 스페인 상인들을 이미 경험한

카리브 해 원주민들은 더 많은 배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공포에 질렸다. 몇몇은 내륙의 열대 우림 속으로 달아나고,나머지는 자신들이 살던 섬을 떠나

필사적으로 섬에서 섬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 앞에 놓인 비극적인 운명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아직 유럽 인들을 경험하지 못한 내륙의 원주민들은 스페인 병사와 상인들이 밀려오자 전통에 따라 그 외지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그리고 그들이 무

엇보다 황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기꺼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금붙이들을 선물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뜻밖의 횡재에 눈이 멀었다. 인디언들은 흐

르는 물에서 손쉽게 사금을 채취해 왔으며 그것은 장식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스페인 병사와 상인들이 그것을 서로 많이 갖겠다고 다투자 원

주민들은 크게 실망했다.

 

 1494년 그 지역에서 황금이 발견되면서부터 사태는 더 악화되었다.  금광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군대가 들어왔고, 타이노 족의 저항이 만만치 않자 콜

럼부스는 유럽 인 한 명이 죽으면 타이노 족 백 명을 죽이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14년 동안에 무려 3백만 명이 넘게 죽었다.  50년 뒤 스페인 관리가 행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불과  2백 명 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콜럼부스 시대의 중심적인 역사학자 라스 카사스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토착민들에게 저지른 잔

한 행위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집단으로 목을 매달고, 불태우고, 아이들의 시체를 개에게 던져 주었다.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던 조화로운 세계 속으로 백인 정착민들은 전염병을 선물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가져온 신무기뿐 아

라 그들 몸에 묻어 온 질병들에도 완전 무방비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백인들이 전파한 천연두균은 이미  1514년에  파나마 군도에서 수많은 인디

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전염병은 19세기까지 연속적으로 대륙을 휩쓸고 지나갔다.  영국 관리들은 인디언 부족들에게 천연두균이 묻은 담요를 의도

적으로 배급했다. 그 결과 밍고 족, 델라웨어 족, 쇼니 족과 오하이오 강 연안의 또다른 인디언 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정부의 병사들도 평원

인디언들에게 똑같은 방법을 사용해 비슷한 성공을 거뒀다.  천연두는 1616년 뉴잉글랜드 해안에 거주하는 거의 모든 인디언들을 전멸시켰고, 1837년에

는 평원 인디언들을 강타했다. 콜럼부스 이후 지금까지 인디언들은 전투나 노환으로 사망한 숫자보다 백인이 전염시킨 천연두, 결핵,결막염,인플루엔자,

성홍열,홍역,콜레라 등으로 목숨을 잃은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위스키를 포함한 독한 술 역시 인디언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백인들은 처음부터 인디언들에게 술을 먹였으며, 조약서에 서명하지 않을때는 추장들 모

에게 술을 먹여 서명을 받아 내기까지 했다. 1677년 델라웨어 족 추장 오카니콘은 몇몇 술 취한 인디언들의 행동에 대해 백인들이 비난하자 이렇게 답

변했다.  "독한 술을 처음 우리에게 판 것은 네덜란드 인들이었다. 그때 그 술이 우리에게 얼마나 해로운 것인가를 알지도 못했다. 그 다음에는 스웨덴 사

람들이 와서 술을 팔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술맛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술은 우리를 난폭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가 무

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 채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서로를 모닥불 속에 집어던졌다. 그 결과 술 때문에 우리 부족의 7할이 목숨을 잃었다."

 

 백인들의 언론도 인디언 말살 정책에 큰 몫을 했다. 1863년 <로키 마운틴> 신문의 사설은 인디언들을 '방탕한 떠돌이들이며 잔인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인종들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쓸어 없애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같은 해에 이 신문에 실린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한 27건의 기사 중 20건이 동일한 논

조로 인디언을 없애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결과 백인 이주자들은 샤이엔 족과 아라파호족 인디언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르

렀다. 1864년 8월 <로키 마운틴>지는 '그들을 끝까지 추적해 천막을 불태우고 아녀자들을 포함해 모두를 없애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의 이런 주

장은 무차별적인 학살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부제: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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