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피서지 풍경 스케치

연이♥ 2009. 8. 5. 06:20

 

★ 첫째날

 

오전 10시 20분,

지리산 가는 길목인 인월에서 남편과 두연군더러 백무동 계곡이나 칠선계곡 중 숙박하기 좋은 곳에서 펜션을 구하라고 한 뒤,

나홀로 '지리산 둘레길' 가운데 인월-금계(19km) 구간을 걷기 시작한다.

 

우리 가족 피서지 영순위인 지리산에 갈때면 나는 어떻게든 하루쯤은 등산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반면,

우리집 남자들은 한결같이 휴가란 물좋고 산좋은 곳에서 며칠 푹 쉬다오는게 최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올해는 그나마 엄마편인 우연군마저 빠지다보니 숫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채 나홀로 걷게 된 것이다.

 

  

 

남원시 인월면에 있는 '지리산길 안내센터' 에서부터 시작하는 '지리산 둘레길' 걷기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가족 단위로 걷는 일행이 많이 눈에 띈다.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걷는 정겨운 모습과는 달리 나홀로 걷기는 어쩐지 초라하고

쓸쓸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처음 출발할때의 설레기 보다는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허전함에 가라앉았던 기분은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금세 허공속으로 흩어져 버린다.

  

 

 

 

 

나는,

꽃으로 길을 기억한다.

 

 

 

여름 지리산 길은 내게 진한 칡꽃 향기로 기억되리라~

 

 

숲길을 걷다보면 시원한 계곡을 지나기도 한다.

 

 

당산목 소나무

 

지리산길을 걷기 시작한지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부터 두연군 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백무동 가는 길에 차가 너무 밀려 칠선계곡 쪽으로 가는 중인데 그곳 역시 차가 많이 밀려서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한다.

얼마후에는 도저히 방을 구할 수 없다며 또 다시 전화가 온다.  해마다 성수기를 피해 휴가를 떠난터라 숙박 예약을 해본적이 없는데

올해는 두연군의 짧은 방학기간에 맞추다보니 성수기여서 펜션이며 민박집 모두 빈방이 없는 모양이다. 

 

숲길을 걷고 있는 중이어서 어디쯤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보니 숲을 벗어나면 다시 합류하기로 하고 한참을 걸으니

시야가 트이면서 동산에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그리하여 나의 지리산길 걷기는 두 시간만에 막을 내리고 실상사 인근에서 우리집 두 남자와 다시 합류한다.

백무동이나 칠선계곡 보다는 비교적 숙박시설이 많은 뱀사골로 들어가 보지만 뱀사골에도 빈방이 없어 달궁계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겨우겨우 방을 하나 구했는데 취사는 밖에서 해야 하고 욕실의 변기도 살짝 고장난데다 이불과 베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비수기 같으면

시설 좋은 펜션 흥정하면 충분히 하룻밤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가격 8만원을 주고 계곡의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에서 일찌감치 저녁을 해먹고

초저녁부터 잠을 청해본다.

 

 

 

★ 둘째날

 

달궁계곡의 아침,

날이 흐리다

 

 

아무래도 이번 피서는 지리산에서 우리 가족을 그다지 반기는 것 같지 않다는데에 의견을 모으고 다음날 아침을 먹고 무주로 떠난다.

아침 일찍 떠난터라 여유롭기도 하고 날씨가 흐려 물놀이를 하기엔 너무 추워서(그날 무주는 정말 추웠다) 칠연폭포나 보러가자며 골짜기를

찾아 들었으나 장금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다는 바람에(국립공원에서는 애완동물 출입이 금지된다는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폭포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고 되돌아 나와야 했다.

 

인파와 차량으로 북적대는 구천동 계곡 대신 군데군데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그림처럼 예쁜 펜션 가운데 한 곳을 골라 가격을 흥정해

숙소로 정한 뒤, 토종닭 백숙을 점심으로 해먹고 전날 불편했던 잠자리를 보상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듯 모두들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다.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두연군과 함께 무주리조트에서 곤도라를 타고 향적봉에 오르기로 하고 갔더니만 곤도라 운행시간이 끝나버렸다.

여름 피서철이어서 늦게까지 운행할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계절에 상관없이 오후 5시면 설천봉까지 올라가는 곤도라 운행이 끝난다.

 

산 아래서 남편과 함께 기다리던 장금이 녀석,

멀리서 걸어오는 우리를 보고 반가움에 꼬리를 흔들며 뛰어오긴 하는데 멀미가 심해서 멀미약을 조금 먹였더니 약에 취해 방향도 제대로 못잡는다.

 

 

종일 흐리던 날씨는 해질 무렵에서야 하늘이 조금 트이면서 아름다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 셋째날

 

 

  

 

 

 덕유산 어느 골짜기에서 맞이한 아침 풍경이 참 맑고 깨끗하다.

 

 

 

 

 

 

 

 

집밖에만 나서면 정착을 모르는 우리가족의 노마드 근성은 아침 식사가 끝나면 무조건 짐을 꾸려야 한다.

남들은 아직도 쿨쿨 잠에 빠져 있을 시간에 우리는 짐을 챙겨 또 다시 길을 떠난다.

 

다행이 전날과는 달리 날씨가 화창해서 어디서든 물만 만나면 물놀이를 하기로 하고 진안쪽으로 들어가니 물이 그다지 깊지 않고

수온도 적당해서 장금이를 데리고 물놀이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을 발견했다.

 

이틀동안 멀미약에 취한 장금이 보기가 안쓰러워 셋째날엔 멀미약을 먹이지 않았는데 그동안 차가 몇 바퀴만 굴러가도 침을 흘리며

멀미 조짐을 보이던 장금이가 용케도 멀미를 하지 않는다.  남편과 두연군은 장금이 수영 실력이 수달보다 낫다며 좋아라 하지만

한사코 물밖으로만 헤엄을 쳐서 나가는 장금이는 수영을 한다기 보다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네 다리를 휘저었을 뿐이다.

 

올여름 휴가는 2:1의 숫적 열세에 밀려 남편과 두연군의 바램대로 2박 3일 동안 먹고자고를 반복하며 푹 쉬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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