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살구이야기

연이♥ 2008. 5. 8. 10:43

 

 

 

 

어버이날을 맞아 친정 부모님을 뵙고 왔다.마침 앞마당에 심어놓은 화초에 물을 주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대문을 밀고 들어서는 딸을 반갑게 맞아주신다.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계시던 엄마는 아버지의 큰 목소리로 딸을 반기는 소리를 들었던지 내가 미처 현관에 오르기도 전에 달려 나오신다.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는 친정이건만 난 참 어지간히도 친정엘 안가는 참으로 까칠한 딸이다.

 

밥 다 되었으니 방에 앉아 조금만 기다리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뒤꼍으로 나가본다.앞마당이 아닌 뒤꼍에 매어둔 두 마리 개는 제 주인과 한핏줄임을 어찌 알고 짖지도 않는다.텃밭에는 갖가지 채소가 심어져 있고 새로이 씨를 뿌리려고 밭고랑을 내놓기도 해서 어느 한 곳 빈 틈이 없다.담장옆에 일렬로 도열한 호두나무,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 꽃진 자리엔 벌써 탐스런 열매들을 맺고 있었다.

 

자두꽃 향기는 정말 좋은데 꽃피던날에 오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담장밖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만큼이나 키가 자란 살구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살구를 바라보노라니 문득 지난날의 흐뭇한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2008. 4. 살구꽃

 

 

 

 

10여년전 녹음이 우거진 6월 어느날, 주말을 맞아 어린 조카의 돌잔치에 참석차 직업군인인 동생 가족이 살고 있는

강원도 화천엘 가기 위해나와 연이형제, 그리고  친정 부모님이 함께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때마침 탐스럽게 열린 살구가 주황색으로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터여서 엄마는 돌잔치때 쓰려고크고 예쁜것으로 골라 딴 살구 한 상자를 정성스레 준비하셨고 고속버스 승객들과 함께 먹을 살구까지깨끗이 씻어서 따로 준비를 하셨던 모양이다.

 

버스가 출발하고 5분쯤 지나자 지하철에서 짧은 정차 시간을 이용해 물건을 파는 사람처럼 엄마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버스 맨 앞으로 나가신다.그리고 들고나간 비닐봉다리에서 살구를 몇 개 꺼낸 다음 고속버스 승객들에게 말씀하신다.

 

" 이 살구는 우리집에서 직접 딴걸로 농약 한 번도 안한 무공해 살구입니다.  우리 막내아들 손주가 돌이라서  지금 강원도에 가는 길인데 오늘 아침에 따서 깨끗이 씻어온거니까 안심하시고 드세요.  다 드시고나면 씨는  쓸데가 있으니 버리지 말고 제가 다시 한 번 더 돌테니까 그때 주세요."

 

하시고는 한 사람당 살구 두 개씩을 손에 쥐어주신다.승객들은 얼떨결에 벌어진 상황에 재밌어 하면서 엄마가 나눠주는 살구를 잘먹겠다는 인사와 함께 받아들었다. 처음엔 엄마가 그러시는게 창피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도 일어나서 통로로 나가 엄마와 함께 살구를 나눠주었다.

 

한참후에 다시 일어나서 엄마가 처음 얘기한대로 살구씨를 걷으러 다녔는데 모든 승객들이 두 개씩 나눠준 살구를 남기지 않고 다 먹은걸 보니 처음에 들었던 창피한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흐뭇했다.

 

박스에 포장해서 강원도까지 가져간 살구 역시 돌잔치에 참석한 군부대 직원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으며 돌을 맞은 조카의 살구색처럼 발그레한 두 볼에도 생기가 넘쳐났다.

 

 

 

 

친정집 살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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