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여행스케치(영주,안동)

연이♥ 2008. 4. 16. 12:04

 

연이형제가 수학여행과 체험학습으로 집을 며칠 비우는 틈을 이용해 내겐 불모지나 다름없는 영남지역 답사 내지는 여행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그  며칠 가운데 들어있는 선거일이 내게는 보너스 같은 휴일이지만 남편에게는 비상체제인 상황이어서 휴가를 낼 수 없다보니

봄날의 여행은 잠시 꿈을 꾸는걸로 족해야 하나보다 생각하던 차에 어느날 갑자기 그야말로 느닷없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당초 계획과는 달리 고등학생인 연이형제가 학교에 가야하는 평일에 1박 2일로 여행을 떠난다는게 적잖이 부담스러웠지만

자기들이 무슨 어린애냐며 걱정 말라고 등떠미는 녀석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기까지 한 가운데 어쨌거나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그동안 조선시대 양반문화와 전통이 살아있는 예천 안동지역에 산재한 서원과,

내로라 하는 건축가들이 해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로 부석사 무량수전을 꼽는다는 그 유명한 무량수전도 보고 싶고,

나도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님처럼 사무치는 고마움을 느끼지는 못할망정 그토록 시원하다는 소백산을 조망해보고 싶었지만,

한반도의 서쪽 끄트머리에 사는 내게 허리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여행을 떠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었다.

 

어쨌거나 준비도 없이 아침 일찍 무작정 나선 길은 점심무렵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원도에서는 며칠째 폭설이 내리거나 폭우가 내리지만 내가 사는 전라도에선 햇볕이 쨍쨍한 날이 계속될때면

우리는 흔히 한반도 땅덩어리도 꽤 크다는 우스갯 소리를 하곤 하는데 지도의 서쪽 끄트머리에서 동쪽을 향해 가는 동안의

창밖 풍경은 그야말로 각양각색 이었다.

 

고속도로변에는 벌써 라일락이 활짝 피어 하늘거리고 산에는 연둣빛 새순과 함께 산벚꽃이 군데군데 피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리고 있는데 한나절이 걸려 도착한 소수서원에는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이제서야 한창이다.

 

 

 

 

 

흐린 물빛이지만 노란 개나리의 반영을 담아보겠다고 풀숲을 헤치고 들어갔다가 그만 뱀을 만나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하마터면 물귀신이 될뻔했다.  

 

 

 

 

 

 

소수서원 선비촌에서 묵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부석사로 출발,

많은 이들은 부석사를 얘기할때면 '부석사'라는 명사 앞에 '그리운' 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얘기하곤 한다.

부석사를 그토록 그리워하는 이들 앞에서 나는 매번 할말을 잃고 '아, 나도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바로 그곳,

부석사에 도착했다.

 

부석사 가는길,

많이 듣던대로 아직 새순이 돋지는 않았지만 가을이면 은행나무 가로수가 장관일 듯 싶고,

아직은 조금 이르지만 이달 하순이 되면 사과꽃 향기가 지천에 흩날릴 듯 싶다.

 

 

 

 

 

 

 

나도 누구처럼 범종각 돌계단에 서서 안양루의 육중한 가벼움을 느껴보고자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래, 경쾌하네!"

 

 

 

  

 

 

 

 

사실, 내가 가장 기대했던건 바로 무량수전 마당에 서서 바라본 소백산 전망이었다.

하지만 흐린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계가 탁 트이질 않아 기대했던 전망을 볼순 없었다.

아무래도 지난해 여름 경주답사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타인의 감상이나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알고 있는 정보가 이번 부석사 답사 또한 온전하게 나만의 감상을 이끌어 내지는 못한 듯 싶다.

 

그리하여 부석사는,

훗날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비웃게 될지 몰라도 지리산 자락 처럼 내게 가도가도 그리움으로 남을것 같지는 않다.

 

 

 

 

부석사에서 나오는길에 영주 특산품이라는 사과를 한 보따리 샀다.

저온창고에서 꺼내온 사과는 빨갛고 단단한게 맛있어 보여 화장실 앞 수돗가에서 씻어서 바로 먹었다.

맛있는 사과를 먹었더니 무더운 날씨에 빠졌던 기운이 다시 팔팔해져 아직 중천에 떠 있는 해를 바라보며 안동으로 출발했다.

 

하회마을로 가기에 앞서 서애 유성룡의 위패를 모셨다는 병산서원에 먼저 들렀다.

병산서원 역시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수없이 사진으로 보았던 곳이긴 하지만 2km 남짓한 길이 비포장 도로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던터라

뜻하지 않은 즐거움과 마주쳤다.

 

 

  

  

 

 

남편과 내가 흙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길을 천천히 달려 도착한 병산서원 주차장에는 우리보다 조금 앞서 도착한 관광버스 두 대에서

연령층도 다양한 일본인 관광객들이 마구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사진속 만대루 중앙으로 걸어오는 중년의 아저씨는 일본인 관광객 아닌 내 남편임을!

 

병산서원을 나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하회마을로 갔다.

평소 하회탈 흉내를 잘 내는 두연이 생각에 하회탈도 하나 사고 제법 기울어가는 오후 햇살을 즐기며 골목골목을 거닐었다.

 

 

 

 

 

 

 

 

사진찍느라 계속 뒤쳐지는 아내를 기다리느라 벚꽃 그늘아래 벤치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남편,

"마누라덕에 자주 쉬니까 좋지요?"

 

 

 

벼락치기 시험공부도 아닌 벼락여행을 다녀왔다.

저녁식사로 헛제사밥에 안동소주까지 곁들여 마셨건만 아이들이 못내 걸린 나머지 안동에서의 하룻밤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밤길을 달려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고속도로변에 피어있던 라일락,이화,도화,산벚꽃,

고속도로 휴게소에 눈부시게 피어 있던 조팝나무꽃,

상주를 지날때 도로 양옆으로 하얀 눈이 내린듯 들판을 온통 하얗게 물들인 이화,

풍기, 예천에는 이제서야 활짝핀 벚꽃, 개나리, 목련,

그리고 온 산에 분홍 물감을 뿌려놓은듯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진달래진달래,

내게 첫 여행겸 답사였던 영주와 안동 가는길의 기억은 그렇게 봄날의 꽃과 함께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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