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처럼

선운사에는 지금

연이♥ 2008. 4. 13. 09:13

 

이른 아침, 조촐하게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선다.

김밥 한 줄, 사과 한 개, 물 한 병, 아프리카 여행기 한 권, 그리고 내 동반자 스틱...

 

예보와는 달리 하늘이 맑지가 않다.

올봄엔 꼭 한 번 만나보리라 맘먹었던 천관산 얼레지 산행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하고

일본으로 수학여행 떠난 우연이가 오후 여섯시쯤에 도착한다고 하니 그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물색한끝에

선운사로 낙점되었다.

 

7시 50분 고창행 직행버스를 타기위해 터미널로 가는 101번 시내버스를 탔다.

오늘의 여행지를 선운사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천관산에 미련이 남은 난 버스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지만

여유있게 나온터라 그런 불상사(ㅎ)는 생기지 않았다.

 

고창가는 직행버스를 놓치게 되면 8시 광주행 직행버스를 타고서 기어이 천관산에 가고 말았을 테니까!

 

승용차로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할 선운사까지 가는데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예전 같으면 감히 엄두도 못낼 시간이지만 이미 대중교통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내게 버스를 갈아타며 한 나절 가까이

걸려야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여행은 늘 허둥대고 조급해하는 평소의 내 성정을 다독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차에 올라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배낭에서 책을 꺼내는 순간 버스가 출발한다.

꽤 긴시간을 차에서 보내야하니 어쨌거나 책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한다.

더욱이 오늘 내가 들고 나선 책속엔 홀로 여행을 떠나는 이에게 용기와 위로를 더해 설렘까지 안겨주는 주옥같은(ㅎ) 글귀가 있었다.

 

여행이라는 것도 그렇다.

우리 일생에서 일부러 노력하지 않으면 여행 조건이 딱 갖추어지는 기회는 없다.

태어나서 30세 정도까지는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고, 30세부터 60세까지는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으며,

60이 넘어서는 돈과 시간은 있지만 여행할 힘이 없다.  조건을 기다리다가는 좋은 세월 다 보내고 늙어서 후회하기 십상이니

어느 때라도 적은 돈만 있으면 시간을 내, 여행이라는 또 하나의 인생을 즐겨야 한다.

 

여기에 한 말씀 덧붙이자면,

돈과 시간도 중요하지만 나그네는 부지런해야 한다!

 

 

 

오전 10시 30분경에 도착한 선운사 주차장에는 이미 수많은 관광버스며 승용차들로 가득찼다.

아마도 선운사 동백꽃을 보려고 많은 상춘인파가 몰린듯 하다. 북적이는 인파속에 묻히는건 내키지 않았지만

마침 때를 맞추었으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운사 동백숲을 그냥 지나칠수는 없는일, 선운사동백은 멀리서보면

그저 숲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뒤틀린 고목의 자태가 탄성을 절로 나게한다.

 

 

현호색 

 

 

 

고깔제비꽃(제비꽃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 

 

개별꽃

 

개구리발톱꽃(개구리가 정말 발톱이 있던가?) 

 

구슬붕이(여름철에 피는 용담이랑 거의 비슷한데 용담에 비해 꽃이 좀 더 작고 푸른빛이 진하지 않고 잎모양이 다르다는 점?) 

 

금붓꽃(버스시간 맞추느라 바삐 걷는 내 발목을 붙들었던 꽃) 

 

양지꽃

 

봄맞이꽃(어차피 버스 한 대는 놓쳤고 꽃밭에 누워 흐린 하늘이지만 잠시 하늘도 보고...)

 

꽃과는 영영 만나지 못하는 운명의 꽃무릇 초록잎 사이로

그 그리움 우리가 달래주겠노라며 풀꽃들이 우후죽순처럼 피어나 꽃밭을 이루었다

 

 

자주괴불주머니 

 

 

 

  

계곡의 물빛은 돌빛이다보니 선운사 계곡의 까만 돌들은 물빛마저 까맣게 물들여 맑은 계곡물의 진실을 왜곡시킨다.

 

 

도솔암 마애불 

 

 

드디어 산에도 연둣빛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 때는 바야흐로 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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