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여행스케치(경주)

연이♥ 2007. 8. 1. 22:29

 

 

★ 경주로 출발

 

일요일 아침 9시,

드디어 경주를 향해 여름 휴가를 떠난다.

일주일이 넘도록 매일 아침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가까이에 있는 미륵산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휴가를 떠나는날 아침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날보다 더 짙은 안개가 여행을 떠나는 설렘에 찬물을 끼얹는다.

호남고속도로 상행선을 주행 하면서도 못내 짙게 드리워진 안개가 못마땅해 한 마디 했더니 남편은 더운것 보다는 낫다고 한다.

"피~ 여름은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쬐어야 제대로 여름 기분이 나지~~~"

 

 

        

         부처꽃...추풍령 휴게소에서

 

 

대전에서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으로 옮겨탄 뒤에서야 챙겨간 '경주답사기' 를 꺼내든다.

미리미리 답사기도 읽어보고 경주 시내 지도도 검색해서 알아보고 했어야 하건만 이도 성격 탓인지

뭐든 미리미리 준비하기 보다는 최대한 여유를 부리다가 늘 마지막에 바쁘다.

 

3박 4일간의 가족여행을 계획 하면서도 전날밤 10시가 지나서야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갔다.

그것도 메모 하나 없는 거의 동물적인 감각의 장보기를 했다.  다른때 같으면 집을 나선지 30분 가량

지나고 나서야 뭔가를 빠트리고 왔음을 알고(가령 지난해에는 냉동고에 얼려둔 삼겹살을 두고 갔다.)

건망증을 탓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경주에 도착해서 짐을 풀때까지도 전혀 빠트린 물건이 없었다는 사실!

 

경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경주는 과연 어디까지 일까를 답사기를 읽다말고 생각해본다.

석굴암?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물론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불국사와 석굴암엘 다녀왔지만 그때 보았던 불국사와 석굴암을 정말로 기억하는건지

남들이 쓴 답사기에서 본 불국사와 석굴암을 기억하는건지, 그도 아니면 워낙 사진으로 많이 본 곳이어서 당연히

내가 본걸로 착각을 하는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본 경주의 모습 가운데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건 불국사앞 숙박촌 뿐인지도 모르겠다.^^

 

 

 

★ 경주에서의 하룻밤

 

기와 지붕의 경주 톨게이트를 빠져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으로 사진으로 많이 봤던 고선사탑이 보인다.

"어라? 고선사탑은 경주 시내에 있는 박물관에 있는걸로 아는데?  박물관이 시내가 아닌 외곽에 있었나?"

(다음날에야 그곳이 바로 경주 시내였음을...ㅠ.ㅠ)

 

방학중에도 보충수업을 해야하는 우연이는 함께 떠나자는 가족들의 권유에(특히 두연이가 필사적으로)

몇날며칠을 고민한끝에 아무래도 여행 때문에 학교에 빠지는건 안되겠다며 혼자 집에 남기로 했다.

 

때때로 가족여행이 필요한 이유야 많겠지만 내가 내세우는건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한 가지,

집에서는 좁은 공간내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게 가족이지만 정작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각자의 시간을 보내게 마련이다.  하지만 가족여행을 하게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공간에서 같은걸 보고

같은 행위를 하게 되다보니 자연 대화가 많아지고 서로의 존재를 뜨겁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첫 날에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감은사지에 들렀다가 경주 시내에서 숙박을 하면서 밤시간에 시내 구경을

하기로 계획을 세운터라 시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감은사지를 먼저 찾아갔다.

 

감포로 가는 도중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 지더니 감은사지에 도착할 무렵엔 제법 굵은 비가 내린다.

차에 있는 우산은 하나뿐인데 빗줄기가 제법 거세게 내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나 혼자서 감은사지 탑을 만나러 갔다.

비가 내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고 호젓하게 탑돌이를 할 수 있겠다 싶어 내리는 비가 오히려 반갑다는 생각을 하면서.

 

감은사탑...

경주에 가면 가장 먼저 찾으리라 맘먹었던 곳이다.

 

 

 

 

감은사탑을 보고 유홍준씨는 그랬다.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또 누군가는 그랬다.

유적이나 유물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흐르면, 혹은 눈물이 흐르면 그게 감동이라고...

 

 

 

 

우산을 쓰고 탑돌이를 한다.

산에 오를때처럼 무념무상으로 탑을 몇 바퀴나 돌았을까...

 

장중한 탑에 비해 폐사지 마당이 참 좁다.

내가 너무 미륵사지나 왕궁리처럼 넓은 마당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나보다.

 

 

 

 

 

 

좀 더 멀리에서 탑을 바라보지만 미소도 눈물도 그리고 무엇보다 감탄사 남발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 흔한 감탄사도 쏟아내지 못한채 몇십 분이 흘러갔다.  결국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졸린다. 빨리 와라!"

 

아무래도 내가 감은사탑에 너무 많은 부담을 갖고 있었나보다. 

' 아...감은사탑이여...ㅠ.ㅠ'

 

 

 

 

그토록 보고싶었던 감은사지탑과 첫 대면을 했건만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음을 못내 안타까워 하면서

석굴암을 향하여 길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돌풍과 함께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거센 비가 내린다.

 

잠시 차량을 도로가 아닌 공간에 세우고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끝에 다시 가자니 이번에는 사고로 인해

차들이 꼼짝을 안한다.  전날에 야근을 하고 먼 길을 나선 남편은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상황이다보니 졸음이

몰려 왔던지 사고 이후 좀처럼 차를 안주던 남편이 내게 운전을 하라고 한다.

 

몇 달만에 하는 운전인데다 타지이고 일기는 불량하지 차들은 앞뒤로 빽빽하지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에서

핸들을 잡고 있다보니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거세게 내리던 비도 그치고

차량 소통도 원활해 지면서 결국 내가 떨고 있는걸 눈치 챘음인지 남편이 다시 운전을 하겠다 한다.

 

예기치 못했던 돌풍과 폭우로 인해 많은 시간을 빼앗겨버려 마음이 조급했지만 처음 감은사지 가는길에

지나쳤던 장항리사지 5층석탑을 오는길에 다시 지나칠수는 없었다.

 

 

 

 

장항리사지앞 계곡...

불과 두어시간 전만해도 계곡에 물이 바짝 말랐었는데 무슨 거대한 폭포같다.

 

 

 

 

 

 

역시 사진으로 많이 봐서 너무나도 익숙한 탑이다.

처음 차를타고 가면서 길건너에 보이는 탑을 보면서 아, 저게 바로 장항리사지 5층탑이구나 할 정도로 익숙한

탑이지만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으로 보던것보다 훨씬 멋진 탑이다.

 

나는 여전히 탑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단지 그냥 멋지다, 예쁘다, 크다 하는 정도의 감상밖에 못한다.

하지만 탑의 위치에서 주변을 조망하는걸 즐기다보니 탑 주변이 아름다우면 괜시리 즐겁다.

내가 직접 본 탑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장항리사지 탑에서 보이는 길건너 야트막한 산의 풍경이 참 맘에든다.

 

   

 

 

 

석굴암...

기대도 많이 했지만 기대했던것 이상으로 대단했다.

아쉽고 또 아쉽다면 유리벽 확 걷어내고 제대로 보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는것...

 

"두연아, 저 입술좀 봐...도톰한 저 윗입술말야...저 두툼한 목주름하며...와...엄마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근사하다."

"별론데..."

"그러지말고 천천히 봐봐..."

"아, 너무 오래봤어요, 목아파요,  그리고 아까 사람들 많았는데 다가고 없어요.  우리도 가요."

 

사실은 나도 정말 목이 아파 고개운동을 하고 있었다.

석굴암 가는길은 가을에 걷는다면 너무나 좋을듯...^^

 

석굴암을 나와 시간을 보니 6시가 다됐다.

이런...6시 이전에 불국사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결국...

불국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시내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었던 계획은 불국사앞 숙박촌에서 여장을 푸는걸로 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다.

 

 

 

 

낮동안의 요란했던 일기가 무색하리만큼 서라벌에 지는 노을이 참으로 아름답다.

비록 빠듯하게 짜여진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만 그 덕분에 남편에게는 좀 더 이른 휴식이 주어지고,

내게는 신라의 천년고도 서라벌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마음을 달래주는 가운데 경주에서의 하룻밤을 맞는다.

 

피곤할때는 한 잔 술을 마시고 푹 자는게 최고라며 소맥을 권하는 남편 말대로 삼겹살에 소맥 두 잔을 마셨더니

먼 여행길의 피로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면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든다.  꿈에서 정교하게 조각된 불상을 수도 없이 만났다.

어쩌면 아직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신라인의 최고의 걸작이 경주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

 

 

 

★ 둘째날

 

원래 계획대로라면 둘째날엔 아침 일찍 서둘러 남산에 올라 곳곳에 산재한 마애불과 탑들을 보려고 했지만

전날에 가지 못한 불국사를 먼저 들러야 했기에 남산에서 평소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 몇 곳만을 골라야 했다.

우선 마음속으로 용장사지와 칠불사 그리고 감실부처를 생각하고 일단 불국사에 갔다.

 

 

 

 

 

 

 

 

"야...두연아, 석가탑이 참 멋진 탑이었구나... 생각보다 크고말야..."

"다보탑이 더 크고 더 멋진데요..."

"그래, 다보탑도 멋지지만 이 석가탑좀 잘 한 번 살펴봐...빈 틈이 없다."

"그래도 전 다보탑이 더 멋져요."

 

아침이어서 해의 방향이 그렇고 잔뜩 흐린 하늘이 그렇고...

감은사지만큼이나 좁은 대웅전앞 마당에서 탑사진 찍기가 쉽지 않기에 사진에 대한 기대를 별로 안했건만

생각보다 사진이 쓸만한게 너무나 없다.

 

 

 

 

 

  

    

     나오는길에 보니 불국사 못가에 핀 무궁화에 햇살이 가득 내려앉았다.

 

 

불국사에서 나오니 벌써 오전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남산을 찾아가고 또 다시 물어물어 용장골을 찾아가고 하다보니 아무래도

또 다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함을 깨닫게 된다.  어느님의 말처럼 경주 시내는 생각보다 좁고 남산은

생각보다 넓다더니 호랑이 등처럼 길게 드리워진 남산을 일주는커녕 차를 이용해 동서를 넘나드는것

자체가 보통일이 아님을 남산자락에 직접 들고서야 실감한다.

 

어쨌거나 남산에서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곳 용장사지를 찾아 계곡을 따라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르는걸 너무나도 싫어하는 남편은 아예 처음부터 차에 있겠다 그러고 두연이와 함께 계곡을 따라

가다보니 중턱에 있는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생각보다 꽤 높은곳에 있었다.

 

 

 

 

 

 

밧줄을 타면서까지 바위를 오르다보니 먼저 목없는 부처님과 마애불이 있고 탑을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보니 더 높은곳에 탑이 있었다.  그래, 탑을 먼저 보고 오자.  다시 길을 찾아 오르니

너무도 전망이 좋은 곳에 삼층탑이 세워져 있다.

 

내가 왜 그토록 이곳에 오고 싶었을까?

아마도 사진으로 본 전망이 너무 좋아서 이거나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 용장사에서 <금오신화>를 집필했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으로 볼때도 그랬지만 직접 올라보니 전망이 정말 시원하고 좋았다.

<금오신화> 다섯 편의 이야기 대부분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데 이곳 용장사에 있으면 들리는건 계곡의

물소리와 남산의 솔바람 소리뿐이니 이곳이 바로 선계가 아닐까 싶다.

 

 

 

 

 

 

경주에서 참으로 인상적인것 가운데 하나가 소나무다.

토함산에 오를때도 그랬고 시내 곳곳에서도 그렇고 남산에서도 그렇고...

바쁜 일정 소화하느라 소나무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한것도 많이 아쉽다.

하다못해 길가에 있는 삼릉원 주변 소나무라도 담아볼것을...^^

 

 

배리삼존석불입상

 

 

용장사지에서 내려오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점심으로 시원한 콩국수를 먹고 아무래도 더이상의 남산에서의 숨바꼭질은 무리일듯 싶어 시내에 있는

첨성대를 보고 박물관에 들러 지리산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첨성대...

생각보다 참 크고 멋지다.

두연이와 함께 경주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가진곳이 이곳 첨성대를 보면서인것 같다.

 

첨성대를 한 바퀴 도는데 막 뒤쪽으로 돌면서 녀석이 한 마디 한다.

"꼭 살찐 고양이 뒷모습 같네!"

"뭐라고? 살찐 고양이 목같다고?"

"아뇨, 그냥 살찐 고양이가 앉아있는 뒷모습처럼 생겼잖아요.  이쪽으로 와보세요.  이 각도에서 봐야 딱 그모습이 나와요."

"그러게, 정말 고양이 뒷모습이네? ㅎㅎㅎ"

 

첨성대 인근을 한 바퀴 둘러본뒤 두연이가 좋아하는 박물관에 갔건만 월요일 휴관이란다.

시간이 넉넉치 않아 휴관이 아니었더라도 여유있게 둘러보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막상 휴관이라고 하니 아쉬움이 크다.

 

마지막으로 한 군데를 더 가자면 어디가 좋을까...그래...가까운 분황사에 가보자.

 

 

 

 

 

 

 

 

"저건 사자가 아니라 물개같애~ "

"이 사자가 제일 그래도 사자같네~"

"사자들이 하나같이 살쪘어."

 

분황사를 끝으로 1박 2일간의 경주 여행(답사?)를 마치고 지리산을 향해 다시 바쁜 길을 떠난다.

남편은 경주가 꼭 남원 같다 그러고 두연이는 한옥마을에서의 비빔밥 체험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보니

전주같은 느낌이 든다하고 나는 그 두곳과는 감히 비교가 안되는 곳이라 하고, 셋의 공통된 의견은 경주에서 살고싶다는것.

 

아직 못가본 곳이 더 많고 그나마 가본곳도 여유를 가지고 다니지 못한터라 많은 아쉬움이 남은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석굴암을 보았고 석가탑 감은사탑 그리고 첨성대를 직접 보았고 남산의 한쪽 귀퉁이나마 올라보았고

경주 지도를 대충이나마 그릴수 있으니 이번 여행은 그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이제는 내가 직접 가본 경주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것 만으로도 내겐 큰 수확이다.

 

경주에서 지리산 가는길...

부산을 지나고 김해를 지나고 창원을 지나고...

둥글게 솟은 산들을 보면서 두연이에게 경주의 능처럼 생기지 않았냐고 물으니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차안에서 먹을 간식으로 산 보리빵이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빵인줄 알았으면 좀 더 많이 사는건데

이 또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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