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마애불 뵈오러 가는길..

연이♥ 2014. 10. 20. 16:27

 

 

 참으로 단조로운 나의 일상에서 길을 떠남은 내가 내게로 주는 최고의 선물이고

내안에서 숨쉬는 자유로운 영혼이 일광욕을 하는 빛의 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다 올려다본 하늘엔 그믐달이 떠 있고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샛별이 또렷이 빛난다.

정갈해진 몸과 마음으로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월출산 산행: 천황사 야영장-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마애불-억새평원-도갑사(7시간 정도 소요)

 

함께 길을 떠난 영암이 친정인 친구와 완도가 친정인 후배와는 10여년 전에도 셋이서 월출산 산행을 한적이 있다.

그때는 바위틈에 분홍의 철쭉이 예쁘게 피던 봄날이었는데 이번에는 황금빛 들판 위에 우뚝 솟은 월출산을 만나러 간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정봉아래 용암사지 가는길에 있는 마애불을 뵈오러 간다.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운전을 한 끝에 도착한 영암의 들판은 그야말로 온통 황금빛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천황사 야영장을 출발해 조금 걷다보면 구름다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바람폭포 방향이 거리가 조금 짧아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초반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보고 식겁했다.

꼼수부리다 된통 걸렸다.

 

 

 

산을 오를수록 점점 멀리 바라다보이고..

 

 

 

내가 처음 월출산을 찾았던게 20대 중반이었다.

결혼전에 근무했던 직장의 선생님들과 함께 봉고차를 빌려서 월출산에 갔는데

월출산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나는 굽도 없는 초록색 천운동화를 사서 신고 갔다가 발이 어찌나 아팠던지 그날의 월출산에

대한 기억은 산을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과 발에 꼭 맞는 새신발 때문에 발뒤꿈치가 까지고 발가락이 아팠던 기억뿐이다.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난 후에 다시 찾았던 월출산에 대한 기억도 몇 토막 남지 않았다.

월출산 천황봉 오르는길..

그 길에 계단이 그리도 많았던가? ㅎㅎ

 

 

 

25년전에 처음 월출산에 올랐을때..

어찌하여 과거 사진은 한결같이 촌스러운지 모르겠다. ㅋㅋ

목에 두른 노란 수건을 걷어내고 싶은 충동이 들게하는 사진이다.

밭매다 산에 오른 사람 같다는~~~

 

 

 

월출산 정상에서..

가을 월출산의 백미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황금빛 들판을 조망하는 것이라 말하겠다.

 

 

천황봉을 지나 하산길로 잡은 도갑사 방향 바람재 인근에 부는 바람은 가히 이름값을 하고도 남았다.

다행이 날씨가 여름날 못지 않은터라 차가운 바람이 아닌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이었다.

 

 

 

하산길에 뒤돌아본 천황봉..

 

 

 

입을 벌리고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먹고싶다는듯 바라보는 '돼지바위' ㅋ

 

 

 

바위 왼쪽 부분에 '남근바위'가 있는데 저쪽 방향에서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이곳에서 찍었더니 그냥 평범한 바위가 돼버렸다.

 

 

 

산을 오른지 네 시간여만에 드.디.어 구정봉에서 마애불 가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갑자기 고요해진 숲길..

좁은 그 길을 걷는 사람도 날아다니는 새도 그토록 불던 바람도 없는 길을 나홀로 걷는다.

그 먼 옛날에 어느 불심 깊은 이가 이토록 험준하고 높은 산속 바위에 부처를 새길 생각을 했을까..

그 옛날에 이곳까지 올라오는 길은 그야말로 험하기 그지없을 터인데..

불심도 없는 나는 또 어찌하여 힘든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왔던가.

마음 가는 곳에 몸이 가는 이치를 따르고자 함이던가.

내 안에 켜켜이 쌓아둔 짐들을 이곳에 부리고자 함인가.

인적없는 숲길을 따라 걷다가 바위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생각보다

더 먼곳에 계시는구나 싶을 즈음에 반가운 이정표와 마주한다.

 

 

 

먼저 마애불 건녀편에 있는 삼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탑신이 1층 밖에 남아있지 않은 이 삼층탑은 아마도 주변에 흩어진  부재를 모아 자연 암반위에 올려놓은 모양이다.

커다란 바위에 새긴 마애불이 한눈에 들어오는 천혜의 조망터이다.

 

 

 

조금 당겨본다..

대개는 중생이 있는 곳에 부처가 계시거늘 수백년의 세월 동안 인적 드문 저곳에 앉아계신 부처님은 얼마나 적적하실까..

월출산의 비경이 위안이 되셨을까..

아..그래도 이곳에 선 중생은 순간이나마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시원해지고 절로 입이 벙글어지니 이 또한 바라보고 계시리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제144호)

 

 

건너편에서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다 마애불이 있는 곳으로 왔다.

사진으로 볼때도 대단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커다란 바위 전체를 오목하게 파서 그 안에 부처를 부조하였다.

귓볼이 어깨에 닿을만큼 내려와 있고 근엄한 모습이다.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불과 같은 고려시대 불상으로 오른쪽 무릎 옆에는 공양을 드리는 작은 동자상도 있다.

 

 

 

오후들어 구름이 많아지면서 빛이 약해졌음이 못내 아쉽다.

이 가을내내 주말을 조신하게 집에서 보내고 목욕재계까지 하고서 뵈러온 부처님인데

정작 복을 달라는 기도의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다 구정봉에서 기다리고 있을

일행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다시 길을 재촉한다.

 

영암이 친정인 불심 깊은 친구는 고등학교때 동네 선후배들과 함께

월출산 산행을 하던 중에 마애불을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고 했다.

친구 역시 아침에 목욕재계하고 약대 졸업반인 딸의 취직 잘 되게 해달라고,

군대간 아들 건강하게 군복무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리려 산을 올랐건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끝내 내려오지 못하는 모양이다.

 

 

 

다시 내려왔던 산을 오른다.

지난 추석 무등산행 때부터 급격히 떨어진 체력..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어부 산티아고를 생각하며 산을 오른다.

노인은 낚싯줄에 걸린 자신의 고기잡이 배보다도 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며 뉴욕 양키즈 소속의 타자 디마지오를 생각한다.

노인이 극한의 고통속에서 발뒤꿈치뼈에 부상을 입고도 경기에 임한 위대한 디마지오를 생각했다면,

나는 낚싯줄에 씻겨 손과 어깨에 피멍이 든 노인의 고통을 생각하며 산을 오른다.

노인은 먼바다에서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며 고통을 이겨냈지만 나는 그저 발걸음이 조금 무거울 뿐이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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