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바람불어 좋은날

연이♥ 2008. 11. 29. 22:43

 

출토인 11월의 마지막 주말,

출근시간은 다가오는데 돌풍과 함께 비가 내린다.

감히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창가에서 돌풍이 멎기를 기다리느라 버스 한 대를 놓쳤다.

마치 태풍이라도 부는양 매섭게 몰아치던 돌풍은 이내 그치고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사무실 창너머로 보이는 코발트빛 하늘아래 떠도는 바람과 구름은 또 다시 내맘속에 돌풍을 일으킨다.

지금쯤 금강하구엔 가창오리떼가 수백만마리 몰려들었을텐데...

금강에 지는 노을을 본지가 언제인지...

그동안 수리 등의 명목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했던 태조(이성계) 어진이 경기전으로 되돌아 왔다는데...

 

 

 

 

  

 

 

사무실에서 간단하게(토스트) 점심을 먹고 전주행 직행버스를 탔다.

전주 터미널 인근에 있는 전주천에는 제법 많은 양의 물이 바람을 따라 은결을 이루고 있다.

흐르는 물의 유혹이 오늘 부는 거센  바람 만큼이나 강해서 버스에서 내려 자연스레 발걸음은 천변으로 향한다. 

전주천변에는 갈대도 아닌 철 늦은 억새가 거센 바람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익산에서와는 달리 전주의 일기는 그다지 쾌청하지를 못하다.

내가 떠나온 익산쪽의 하늘은 여전히 파란데 전주의 동남쪽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천변을 따라 30분 가량 걷는 동안 구름속에 숨어 숨바꼭질 하던 햇님이 날도 추운데 고생한다며 딱 한 번 비추어 주었을 뿐이다.

천변에 줄지어 늘어선 능수버들은 전주의 명물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만큼 장관이었다.

 

오늘처럼 바람불어 좋은날엔 마냥 걸어야 하는데 걷기에 편한 신발을

신지 않고 연이형제가 생일선물로 사준 구두를 신고온게 못내 후회된다.

바람을 쫓아 억새밭을 한바탕 누비고 나왔더니만 구두 꼴이 말이 아니다.

종일토록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구두를 닦아야만 하는 성격인 내겐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전주시내 구 도심의 가로수는 대부분이 은행나무이다보니 요동치는 바람에 잎 먼저 떨구고 그대로 매달려 있던 열매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밟았다간 구두에 얼룩도 심하고 냄새가 밸까봐 밟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워낙 많은 은행열매가 떨어져 있다보니 밟지 않고는 걸을수가 없다.

처음엔 구두 때문에 신경이 쓰여 조심조심 걷다가 몇 번 밟다보니 와드득와드득 은행 깨지는 소리에 은근 중독되어 재밌기까지 하다.

하지만 냄새가 장난 아니어서 길을 걷다가 보도블럭에 조금이라도 물이 고여있으면 구두를 씻고 걷다가 다시 밟기를 되풀이했다.

오늘, 거센 바람이 부는 전주 시내는 그야말로 구린내가 진동했다.

 

 

 

★ 전주 객사(보물 제583호)

 

조선초기, 전주에 온 사신이나 관리의 숙소로 본관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 패를 걸어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경의를 표했으며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이곳에서 축하의식을 행하였다.

 

 

 본관 현판인 '풍패지관'

 

 

터미널에서 내려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객사에 도착했다.

때마침 객사 건물에 약품처리를 하는 바람에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출입문은 잠겨 있었지만 객사 담장이 워낙 낮아서 밖에서만 봐도 대충 구경은 가능하다.

 

 

 

 

경기전慶基殿(사적 제339호)

 

경기전 일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한 경기전 및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

예종대왕의 태를 묻어 두었던 태실과 기념비,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 등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종묘 다음으로 유일하게 '종묘제례악'을 연주할 수 있는 곳이다.

 

 

 

 

    

 

하마비 : 경기전 앞에 세워진 이 하마비는 태조의 어진을 모신 곳이기에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는 뜻으로 '至此皆下馬 雜人母得入'이라 새긴 하마미를 1614년에 세웠으며 1856년에 중각함.

 

 

 

태조 이성계 초상화(보물 제931호)

경주, 평양 등지에서 보관하던 이성계의 초상화는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버리고 경기전에서 보관하던 것만 남아 있다.

이 초상화는 고종 9년(1872)에 낡은 초상화를 불태워 없애고 서울 영희전에 있던 초상화를 새로 본떠 그린 것이다.

 

 

 어진이나 위패를 모시던 가마(이 가마는 영조때 쓰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분은 내가 사모하는 분

 

 

 

 

★전주사고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1597년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을 1991년 복원하였다.

 

 

  

  전주사고 앞 또 다른 명물, 매화나무

 

 

곳곳에 즐비한 은행나무 고목 

 

 

 

 

★ 전주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에는 최명희 문학관이 있는데 그곳 전시관에서 '작가의 혼'이 느껴지는 글귀를 발견했다.

 

                                                                                  

 

 

 

★ 전동성당 (사적 제288호)

  

 

 

 

      

 

참 아름답다.

1907년에 착공했으니 백 년의 세월을 담고있다.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혼합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양식 건축물로 꼽힌다. 

1791년 신해박해때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 밖에 세워져 천주교 순교지로서의 위상 또한 매우 높은 곳이다.

 

 

 

경기전 담너머로 바라본 전동성당

 

 

오후내내 전주의 날씨는 흐렸다 잠시 갬의 반복이었다.

그 잠시 갬의 틈에 전동성당 위로 노을빛 물든 하늘이 너무도 아름답다.

 

전주 나들이를 하는날엔 언제나 친구를 만나곤 했었는데 워낙 카메라를 놓지 않는 나를

하염없이 기다려주는 친구에게 미안해서 이번에는 사진부터 찍고 전화를 하기로 했다.

 

헌데 이게 웬일이람!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다보니 아직 풍남문에도 못갔는데 어느새 해가지고 있었다.

 

오늘,

바람불어 좋은날,

그 바람의 유혹에 이끌려 발바닥이 아프도록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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