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나무이야기

연이♥ 2007. 7. 14. 12:51

 

 

지리산의 소나무 

 

 

오늘날 우리의 산을 둘러보면 온통 소나무요,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도 역시 소나무다.

주거문화라는 영역뿐만 아니라 삶의 전체를 대표하는 문화에 나무를 넣어본다면 우리 나무문화는 주저없이 소나무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와 소나무의 길고 질긴 인연을 고려해볼때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삼국시대에서 고려로 이어진 우리

역사의 중반기에는 참나무와 느릅나무, 느티나무가 소나무 못지않게 선조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한다.

 

 

 

 미륵사지 넓디너른 폐사지 한 켠에 단정하게 서있는 소나무...

 

 

백제의 건축재를 짐작할 만한 자료는 매우 부족하지만 익산 미륵사지와 궁남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있다. 

미륵사지에서는 바늘잎나무인 소나무와 금송이 보였고 넓은잎나무로는 밤나무,가래나무,버드나무,오리나무 등이 발견되었다. 

궁남지에서는 느티나무,참나무,밤나무,소나무 등이 출토되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나무는 미륵사지에서 나온 금송이다.  작은 토막 형태로 남아 있어서 쓰임새 추정이 어려우나

출토된 위치로 보아서 관재가 아님은 분명하다.  금송의 원산지인 일본의 경우 조각재나 기구재로 쓰이는 예는 드물고

주로 건축재나 관재로 이용했다.  따라서 미륵사지 출토 금송은 건축재 그 중에도 기둥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부여 능산리에서 나온 비자나무 역시 관재뿐만 아니라 건축재로 쓰였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수입재 금송과 남해안에서 자라는 비자나무는 아무래도 왕족이나 고급 귀족들이 쓰던 나무였을테고

느티나무와 밤나무,참나무 등은 일반 백성들이 사용했으리라 짐작된다.

 

 

 

내장산 비자나무,

참 멋진 나무다. 

우람하고 잘생기고 겨울에도 푸르고...

 

 

 

금산사 당간지주옆 아름드리 느티나무...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 말인 1376년에 지은 건물로서 기둥의 나무는 모두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 목재는 나뭇결이 곱고 황갈색 빛깔에 약간 윤이 나며 썩거나 벌레가 먹는 일이 적은데다 다듬기도 좋다.

그러면서도 물관의 크고 작음이 확실히 구분되는 배열이 독특하여 아름다운 무늬를 갖는다. 

 

나무가 클수록 비늘 모양,구슬 모양,모란꽃 모양의 무늬와 함께 기름기가 약간 밴 듯한 광택이 특징이다.

건조를 할 때 갈라지거나 비틀리는 경우가 적고 마찰이나 충격에 강하며 단단하다.  동구 밖 아름드리 당산목 느티나무의 고고함을

구태여 강조할 필요는 없으리라.  나무의 여러 가지 속성만 따져도 세계적으로유명한 나무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 좋은 나무다. 

한마디로 나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장점을 다 가지고 있는 '나무의 황제'다.

 

 

     

 

 

선운사앞 고목,

나무는 실제로 살아있는 부분은 껍질에 가까운 일부 목질에 불과하므로 가운데가 모두 썩어버려도 잘 살 수 있다.

 

 

나무는 3월에 햇볕이 따사로워지면 나무껍질 바로 아래에 있는 부름켜에서 겨울 동안 쉬고 있던 세포가 분열을 시작하여

밖으로 부피를 늘려간다.  봄의 끝자락인 5월까지 왕성하게 분열하며, 시기에 만들어진 세포는 크고 세포의 벽이 얇으므로

부드럽고 색깔도 연하다.  흔히 춘재春材라고 부르는 부분으로 3월에서 5월 말 사이에 만들어진다.

 

6월에 들어서서 잎이 완전히 피고 광합성이 활발할 때면 세포 분열 횟수가 느려진다.  이때 만들어진 세포는 크기가 작고

세포의 벽이 두꺼우며 단단하고 진한 색을 나타낸다.  나무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의 나무들은 7월을 고비로 분열 활동이

급격히 둔화된다.  8월 말에서 늦어도 9월 중하순에 이르면 대부분의 나무들은 분열 활동을 멈추고 이듬해 봄까지 긴 잠속에 빠진다. 

이렇게 6월 이후 9월 사이에 만들어진 세포가 하재夏材이다.  흔히 추재秋材라고 부르기도 하나 가을이면 자람이 끝나버리므로 맞지 않는 말이다.

  

1년동안 자란 춘재와 하재를 합친것이 나이테이며 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매년 하나씩 만들어간다. 

적당히 비가 오고 햇빛을 충분히 받아 좋은 날이 계속된 해에는 나이테가 넓고 반대의 경우는 좁아진다. 

또 나무가 한창 자랄 시기에 극심한 가뭄이나 병충해, 늦서리 등으로 갑작스럽게 환경이 나빠졌을 때는 나이테처럼 보이는

'가짜 나이테'가 생기거나, 심한 경우 한 해 동안 나이테 만들기를 아예 쉬어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나무는 자기가 부닥친 자연계의 복잡한 환경 조건을 있는 그대로 나이테에 기록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연유로 1년 동안의 계절 변화가 뚜럿한 온대나 한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만 나이테가 생긴다. 

여름이 계속되는 열대지방에서는 우기와 건기에 따라 온대지방의 춘재와 하재를 닮은 희미한 테가 생기기도 하나

진정한 의미의 나이테가 아니므로 나이테가 없다고 말한다.

 

나이테의 숫자는 바로 그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나타낸다.  사람이 백 살을 넘기기 어렵고 장수의 대명사인 거북도 길어야

1~2백 년이 고작이다.  나무는 험난한 자연환경에서 맨몸 하나로 보통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을 살아간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생물체다.

 

 

마이산 운수사 청실배나무...

 

 

이 나무는 몇 살일까? 고목이라면 그 나이가 더 궁금해진다.

나이를 알아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나무를 베어내고 그루터기에서 나이테를 세어보는 것이다.

나이테 개수에다 그루터기까지 자란 햇수 3~5년을 더하면 정확한 나이가 나온다.  그러나 나무를 베어야만 한다면

빈대 잡으려고 초가 삼간 다 태워버리는 격이니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자르지 않고 나이를 짐작하는 방법은 없을까?

먼저 기록이나 전설에서 나이를 짐작하는 방법이 있다.  고려시대에 보조국사가 제자와 함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랐다는

송광사 곱향나무 쌍향수는 8백 년,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심었다는 진안 마이산 청실배나무는 6백 년이라는 식이다.

 

요즈음처럼 정확하게 심은 날짜를 기록해둔 것이 아니니 이런 나이는 어디까지나 전설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큰 고목들의 나이는 대부분 이렇게 아리송한 전설 나이다.

 

 

 

천마도...책속에 실린 사진^^ 

 

1973년 8월 20일,

여름 장마가 걷히고 오랜만에 화창해진 늦여름의 어느날, 우리나라 옛 무덤 발굴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 하나가 알려진다.

주인을 몰라 그냥 155호라고 번호만 붙인 이름 없는 무덤에서 1500년 세월을 묻어둔 컬러 그림 한 점이 선명한 색깔을 뽐내며

찬란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나무껍질 위에 그려진 그림은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천마天馬였다. 

덕분에 155호 고분이라는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나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천마도는 하늘로 오르는 흰말을 그렸는데 앞뒤 발을 넓게 뻗었으며 벌린 입으로는 긴 혀를 내밀고 있다.

목덜미의 갈기와 힘차게 뻗쳐오른 꼬리털은 바람에 휘날린다.  날개가 있고 몸통 군데군데에는 반달 모양의 문양이 보인다.  

힘차게 하늘을 달리는 천마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그려낸 원숙한 솜씨가 돋보인다.

이 천마도는 신라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그림으로서 벽화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자작나무

 

 

옛사람들은 그림 재료로 흔히 천이나 비단, 가죽 등을 썼다.  그런데 천마도는 캔버스로 나무껍질을 이용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무슨 이유에서 나무껍질을 택했으며 어떤 나무의 껍질을 이용했을까?

 

처음 발굴단에서는 눈으로 백화수피白樺樹皮라고 추정했고, 나중에 중앙임업연구원에서 행한 정밀검사에서도 역시 백화수피로 판정됐다. 

백화수피의 백화는 자작나무를 뜻하는 말이니 글자 그대로 자작나무 껍질을 일컫는다.

 

자작나무에는 일종의 방부제에 해당하는 큐틴이 다른 나무보다 많이 들어 있어 잘 썩지 않고 곰팡이도 거의 피지 않는다. 

왁스 성분이 많아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 높은 방수성도 갖는다.  그래서 수천 년 땅속에 묻혀 있어도 거뜬히 버틸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 조상들에게 선택된 것이다.

 

천마도의 경우는 나이 40~50년 정도, 지름 약 20~30cm 정도의 나무에서 껍질을 벗겨 쓴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가 흔해지기 전이었으니 자작나무 껍질은 천마도처럼 그림을 그리고 불경을 새겨 넣는 재료로 안성맞춤이었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경이 발견됐는데 기원전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자작나무 껍질에 인도의 옛 문자인

산스크리트어로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시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천마도가 자작나무 껍질이기 보다는 자작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거제수나무나 사스레나무 껍질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천마총이 만들어진 시기에 자작나무가 서식한 곳은 북쪽 지방인 고구려의 추운 지방이었기 때문인데, 당시 신라 영토 안에서 얼마든지

구할수 있는 나무를 두고 수입을 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추측에서다..

  

 

 

 

고려 현종 2년(1011)부터 거의 80여 년에 걸쳐 처음 나무대장경 새기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 만든대장경이라 하여 초조대장경이라 부르는데 이후 150여 년 동안 부인사에 정성스럽게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고종 18년(1231) 몽골군 2차 침략 때 사리타이가 이끄는 몽골의 화마로 초조 대장경판은 하룻밤 사이 처참한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고종 23년(1236)부터 고종 38년(1251)까지 16년에 걸쳐 고려인이 몸과 마음을 바쳐 이룩한 팔만대장경판(고려대장경판)이 완성되었다. 

경판 한 장에 새겨진 글자 수는 앞뒷면을 합쳐 한 장에 640자이다.  따라서 전체 팔만대장경판의 글자 수는 5천 2백만 자나 된다.  

 

팔만대장경판의 재료로 쓰인 나무는 대부분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선택받은 주인공들임이 밝혀졌다.

산벚나무는 잎도 피기 전 삭막한 산속에서 화사한 꽃을 무리지어 피우기 때문에 멀리서도 금세 찾아낼 수 있다. 

껍질에는 가로 숨구멍도 있어서 다른 나무와 구별이 쉽다.  몽골군에게 점령당해 빼앗긴 산에서 몰래 베어오기는 이런 나무가 안성맞춤이다.

 

베어 넘긴 나무는 1년 정도 방치해서 나무가 갖고 있던 스트레스를 없앤다.  흔히 말하는 숨죽이는 과정이다. 

어차피 판자로 쓸 나무이닌 통나무 그대로 가져올 필요는 없다.  산에서 바로 나무를 켜서 판자만 가지고 내려오면 되고

곧바로 소금물에 삶아 음지에서 천천히 말린다.  다음은 판자 표면을 깨끗이 대패질하고 미리 경전을 써둔 한지를 뒤집어 붙인다. 

풀이 마른후에는 글자가 잘 보이지 않으니 들깨 기름을 살짝 발라 글자가 잘 보일때 새김에 들어간다.  경판을 보호하고 인쇄할 때

취급이 편하도록 양 모서리에 손잡이를 붙이면 경판 작업은 끝이다.

 

굴자를 새기는 작업이 핵심 기술인데 능숙한 기술자가 하루 종일 매달려도 40~50자가 고작이다. 

그러므로 한 달에 경판 두 장을 만들기도 빠듯했을 것이다.  동원된 연인원을 따져 보았더니 100만 명이 훨씬 넘고,

여기에 나무를 베어 오고 판자를 켜는 도우미 인원까지 계산하면 실로 엄청난 인력과 물자가 동원된 작업임을 확인하게 된다. 

한마디로 고려국의 운명을 걸고 온 나라 백성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든 대작이다.

 

         

 

 

 

 

 

 

 글  : 박상진

사진: 연이^^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박상진 지음/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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