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탱자나무 전설

연이♥ 2007. 6. 9. 10:02

2007. 5월 어느날 탱자나무 아래서 잠시 비를 피했던...^^ 

 

 

 

  옛날에  자식 다섯을 데리고 과부가 살았다.  남편이 남기고 간 것이 없는 살림 살이는 혼자의 힘으로

아무리 뼈가 휘도록 일을 해도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다.  몇 년을 이 앙다물고 살아낸 과부는

더는 견디질 못하고 병이 들어 눕고 말았다.  그대로 굶어죽게 된 형편이었다.   그 소문이 나자 하루는

어떤 노파가 찾아왔다.  산 너머 부잣집에 큰딸을 소실로 보내면 논 닷마지기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딸

은 열다섯 살이었다.  과부 어미는 딸에게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어서 노파가 대신하기로 했다.

 

  노파의 말을 들은 처녀는 하룻밤 하루낮을 운 끝에 그리 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노파한테

내세운 조건이 있었다.  닷마지기의 논 대신 그 값에 해당하는 쌀을 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조건이었다.  처녀는 쌀을 받은 날 집을 떠났다.  늙은 부자와 첫날밤을 지낸 다음날 저녁 처녀

는 뒤뜰 감나무에 목을 매고 말았다.   늙은 부자는 처녀의 죽음을 안쓰러워하기는커녕 속았다고 펄펄

뛰며 당장 쌀가마를 찾아오라고 불호령을 쳤다. 하인들이 부랴부랴 처녀의 집으로 갔으나 식구들은 간

곳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늙은 부자는 더욱 화가 나서 처녀의 시체를 묻지 말고 산골짜기에 내다버

리라고 명령했다.  저런 못된 것은 여우나 늑대한테 뜯어먹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녀의 시체는 정말 내다버려졌다.  그런데 그날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며 처녀의 시체를 업고

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건 처녀와 남몰래 사랑을 나누어왔던 사내였다.   사내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평장平藏을 했다.   그런데 다음해 봄에 그 자리에서 연초록 싹이 터올라왔다. 그 싹은 차츰 자

라면서 몸에 가시를 달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때서야 그것이 애인의 한스런 혼백이 가시 돋친 나무로

변한 것을 알았다.  아무도 자기 몸을 범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몸에 가시를 달고 환생한 애인의 정절에

감복한 사내는 평생을 혼자 살며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산지사방에 나무 심는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중에서...

  

 

어렸을적 내가 살았던 집에도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학교갔다 돌아오는 길에 클로버 입처럼 생긴 탱자나무 잎을 따서

어깨 너머로 떨어뜨려 그날의 운수를 점치곤 했었다.

 

맨질맨질한 앞면이 보이게 땅으로 떨어지면 그날 운이 좋은거고

조금은 까칠한 뒷면으로 엎어져 떨어지면 별로 기대할게 없는 날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얼 기준으로 운이 좋고 나쁨을 가늠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군것질거리가 부족했던 그 시절엔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다거나

어두워지도록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고 들어가도 엄마한테 혼나지 않는것쯤 되겠다.

 

여름의 끝자락에 탱자가 노랗게 익으면 친구들과 함께 탱자나무 가시에 찔리고

유난히 탱자나무 주변에 많았던 모기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노란 탱자를 따서

책가방에 담아와 앉은뱅이 책상 한켠에 놓아두곤 했었다.

 

그때 그시절의 난 이땅에서 서럽게 살았던 민초들의 애환이 담긴 탱자나무 전설같은건

알지도 못했지만 봄이면 연초록의 잎이 나고 그 잎에서 작고 하얀 꽃을 피운뒤에 올망졸망

열리는 탱자와 함께 나의 머리도 가슴도 그리고 꿈도 조금씩 영글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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