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대나무 전설

연이♥ 2007. 6. 24. 21:31

 

  옛날 어느 작은 마을에 큰 부자가 하나 있었다.  작은 마을에 큰 부자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마을의 논밭이며 산이 모두 그 부자의

것이었고, 삼십여 가구 사람들은 모두 그 집의 종이나 마찬가지인 소작인들이었다.  그 부자는 어찌나 욕심이 많고 마음이 혹독한지 추수

때 나락을 받아들이며 자기가 보는 앞에서 일일이 말질을 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을 쿵쿵 두 차례씩 다지게 했다.  자기 산에서는

솔가지 하나 꺾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솔잎 한 갈퀴 긁어내지 못하게 단속을 했다.  동네사람들은 나무 한 짐을 하자면 몇 십리 밖

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작인들의 닭을 예사로 잡아갔고, 자기 집 잔치에 돼지를 추렴시키고는 했다.  그런 그가 흉년이 들었다고 해서 소작료

에 사정을 둘 리가 없었다.  그런데, 한 해도 아니고 내리 삼 년을 흉작이 덮쳐왔다.  빚 무서운 줄 알면서도 굶어죽을 수는 없어 두 해에

걸쳐 빌려다 먹은 장리쌀빚이 있는데다가 또 흉년이 겹쳐 소작료에 장리빚 이자만을 합쳐 나락을 바치더라도 사람들은 거의가 굶어죽게

될 형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리빚을 내년으로 연기해주거나, 그것이 아니면 소작료 반을 일 년 동안 연기해달라고 사정했다.

 

 

                           담양 죽녹원...(2006.2.5)

 

 

그러나 그 사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네사람들은 추수가 끝나고 오히려 굶주리기 시작했다.  겨울이 닥치는데 그대로 굶어죽을

수가 없어 사람들은 몇 차례나 지주를 찾아가 장리쌀을 풀어달라고 애걸했다.  그러나 지주는 쌀쌀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겨울이 깊어

가면서 죽마저 끓일 수 없는 집들이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밤 세 남자가 부잣집 담을 넘어갔다가 그 집 하인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다음날 세 남자는 동네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부잣집 하인들에게 맞아죽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그 누구도 부잣집 창고를 넘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지는 않았다.  여섯 남자가 비밀리에 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 굴은 부잣집 창고를 향하

여 뚫려나갔다.  죽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도 여섯 사람은 사생결단 굴을 파서 마침내 창고 아래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쌀가마니가 아니라 죽음이었다.

 

 

                           내장산 벽련암...(2006.12.31)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 쌀가마니 무게로 굴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결국 여섯 사람은 쌀가마니에 깔려 죽은 것이었다.  부잣집 종들이

파낸 시체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모두 한구덩이에 매장되었다.  그리고 여섯 사람의 가족들은 마을에서 강제로 내몰렸다.  그것은

부자가 분풀이를 한 것만이 아니었다.  농사지을 남자가 없어졌으므로 그 가족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집 저집에서 굶주려 죽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노인네들이 죽어갔고,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이 부잣집으로 몰려가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

하고 애걸했지만 대문은 열릴 줄을 몰랐다.  겨울이 지나고났을 때 동네사람들은 삼 할 정도가 굶어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영양실

조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때서야 농사지을 일이 걱정이 된 부자는 장리쌀을 풀어 내놓았다.  그런데, 땅에서 싹이 돋고 나무에서 움이 트기 시작하면서 동네

이곳저곳에서는 이상야릇한 일이 벌어졌다.  전에 전혀 볼 수 없었던 괴상스럽게 생긴 싹이 돋아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잎도 줄기

도 없이, 성낸 새벽남근같이 생긴 그 싹은 부잣집 마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안방 구들을 뚫고도 솟았고, 창고 쌀가마니를 뚫고도 솟았다. 

부자는 종들에게 그 싹을 다 쳐없애라고 호령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면 다른 싹이 돋아올랐고, 쳐내고 나면 또 다른 싹이 돋아 올랐

다.  여름이 되자 부잣집은 그 이름 모를 나무로 가득 차 완전히 폐가가 되었고, 농토에도 빽빽이 들어차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지리산 화엄사계곡...(2006.9.3)

 

 

부자가 마을을 뜬다는 소문이 퍼졌다.  농사를 지을 땅이 없어졌으므로 소작인들도 마을을 떠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동네 남자들은 꿈을 꾸었다.  맞아죽은 세 사람과 굴에 파묻혀 죽은 여섯 사람이 함께 나타나서, 배곯는 것도 서러운데 우

리는 죽음도 너무 원통절통하게 했다.  우리는 가슴에 서리서리 맺힌 한恨을 풀 길이 없어 나무로 환생을 했다.  먹을 것은 전부 부자놈

한테 뺏기고 배를 곯을 대로 곯아 겉모양만 사람이었지 속은 텅텅 비었던 생전의 꼴새 그대로 환생한 까닭에 나무 속도 마디마다 텅텅

비어 있다.  나무를 잘라보면 알 것이니 놀라지 말라.  그 나무를 길게 잘라 한쪽 끝을 뾰족하게 다듬어 그것으로 부자놈 배때기를 찔러

죽여라.  그리고 빈 통에 그놈의 피를 채워 우리 묻힌 자리에 뿌려주면 맺힌 한을 풀고 저승길을 편히 갈 것이다. 부자놈이 떠나기 전에

당장 우리 원수를 갚아라.  너희들은 우리가 원통하게 죽은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했다.  이번에도 우리 원수를 갚아주지 않으면 화가 너

희들에게 미칠 것이다.

 

이런 말을 남기고 아홉 사람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꿈이 하도 기이하고 생생해 남자들은 일시에 잠이 깨었고, 옆집 옆집으로 연

락을 취해 다 한자리에 모여앉고 나서 모두 똑같은 꿈을 꾼 줄 알게 되었다.  남자들은 망자들의 뜻을 따라 원수를 갚기로 결의했다.

그래서 나무를 잘랐는데 나무는 과연 속이 텅텅 비어 있었다.  남자들은 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아 창을 만들어 들고 어둠을 헤쳐 부잣

집으로 쳐들어갔다.  부자는 창에 전신을 찔려 죽었고 창을 뺐을 때는 그 빈 통에 부자의 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미륵산 사자암 가는길...(2007.6.22)

 

 

그 피는 아홉 사람이 묻힌 자리에 뿌려졌다.  며칠 뒤에 마을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농토에 솟은 그 나무들이 노란 꽃을 피우

더니만 꽃이 지면서 그 나무들도 죽어갔다.  왜 하필 농토에 솟은 나무들만 죽는지를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 노란 꽃은

한을 푼 넋들의 승천이고, 나무들이 말라죽은 것은 다시 농사를 짓고 살라는 뜻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죽은 나무숲에 불을 질

러 다시 농토를 일군 다음 골고루 몫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 농토는 전보다 훨씬 기름져 곡식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울 지경이었

다.  사람들은 자기들을 보살피는 망자들의 넋에 고마워하며 추수 첫 곡식으로 제사상을 걸고 정성스럽게 차렸으며, 그 나무는 옮겨심

는 사람도 없는데 해마다 이 고을, 저 고을로 번창해나갔다.

 

누가 이름지었는지 모른채 사람들은 그 나무를 '대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대를 물린 가난한 넋의 환생이란 뜻이라고도 했고, 남들 대

신 죽어 남을 이롭게 한 넋의 환생이란 뜻이라 말하기도 했다.  대나무는 가난한 소작인의 넋이라서 춥고 배고픈 것을 싫어해 기온이

따뜻하고 농지가 넓은 땅에만 산다고 했다.  그리고 겨울에 댓잎들이 유난히 서걱거리는 것은 '추워, 배고파, 옷 줘, 밥 줘' 하는 넋들

의 읊조림이라고 했다.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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