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바람

연이♥ 2018. 5. 24. 16:07




 


부처님오신날...

지난 주말에 전라북도교육청 9급공무원 시험을 치른 우연군과 함께 부여나들이를 했다

1년 조금넘게 사생활이라곤 가끔 밥사주는 친구들 만나 밥먹는거 말고는 거의 없이

오로지 5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는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생활을 했기에,

무엇보다 바깥 바람이 시급하다는 긴급 처방끝에 답사를 겸한 여행을 떠난 것이다



마침, 정림사지 박물관에서는 '무량사 부여나들이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2018.5.15 ~ 2018.7.15)




금동보살좌상(무량사 오층석탑 3층 탑신 출토)


금동지장보살좌상(1층 탑신 출토 삼존불)


금동아미타불좌상(1층 탑신 출토 삼존불)


금동관음보살좌상(1층 탑신 출토 삼존불)



무량사 삼전패(보물제1860호) 가운데 '나무아미타불'패

1654년네 제작하였으며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대세지보살'을 묵서로 써 놓았다

용 두 마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문양을 중심으로 하여 그 사이사이를 구름무늬로 채워 넣었다





 



 

                오세 김시습 묘비편                                                                        김시습 초상화(보물제1497호)


김시습과 무량사


매월당 김시습은 1455년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불가에 귀의해

설잠雪岑 이라는 이름의 승려가 되어 전국을 유람한다 

영남지방을 유람하던 김시습은 1465년 경주 금오산金鰲山

 용장사에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썼다

 

매월당은 말년에 삼각산 중흥사에 머물다 

1491년 한양을 떠나 설악산으로 들어가고,

1493년 2월 홍산현(현재 부여) 무량사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무량사에서 무진암 가는 길가 부도밭에 매월당의 부도가 있다

율곡 이이가 쓴 '김시습전'에 따르면, 

"병이 들어 홍치 6년(1493) 홍산현 무량사에서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난다.

 유언에 따라 화장을 하지 않고 절 옆에 임시로 장사지냈다.
3년 후 장사를 지내려고 염을 하는데 안색이 산사람과 똑같았다.

이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놀라 경탄했다고 한다.

불교의 예에 따라 다비를 했다.

이것은 승가에서 불태워 장사지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유골을 모아 부도를 만들었다."





무량사 극락전 삼장보살탱(1747년,영조23년)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지지보살과 지장보살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권속들이 에워싸고 있다

천장보살은 진주.대진주보살이,

지지보살은 용수.다라니보살이,

지장보살은 무독귀왕.도명존자가 각각 협시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내려와 매일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만 한 우연군은

집에 내려온지 1년 3개월만에 체중이 10kg나 늘었다



궁남지 주변에는 연잎밥을 파는 식당들이 몇 군데 있는데

식당밖 건물벽에 상차림 사진이 있어 다른집과 비교가 가능하다

우리가 찾은 이곳 식당의 반찬은 언듯보면 상다리 휘게 많아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먹을건 밥 뿐이었다




박물관 가는길에...



부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고려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여

'개태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운좋게도 그 첫날이었다

(2018.5.22 ~ 2018.7.22)




태조 왕건과 개태사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후 창건한 사찰로

태평성대를 연다는 의미를 담아 "개태"라는 이름을 붙인 절로 940년에 완공되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세운 기념비적인 사찰이자

태조의 진영이 봉안된 진전사찰로서 태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가람이다

 


또 다른 태조의 진전사찰인 '봉업사'가 새겨진 쇠북

(1217년, 보물제576호, 안성시 죽산면 출토,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태조 현릉 십이지상 탁본(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황해북도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한 고려 태조 현릉의 십이지상이 새겨진 호석의 탑본이다

현릉은 태조 왕건과 왕비 신혜왕후가 함께 안장된 합장분으로

송악산의 지맥인 만수산 기슭에 위치하며 943년에 조성되었다



개태사 출토 소조상 파편



보령 성주사터 출토 소조불상



 

                         청양 도림사터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부여 보광사터 사리장엄구(좌)   무량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우)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서산 보원사터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청동탑조각(중앙,우)....고려/청양군 정산면/국립부여박물관

신장상(좌)....고려/보령 성주사터/국립부여박물관

청동인물상(좌)....고려/서산 보원사터/국립부여박물관



청동탑(고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에는 청동제의 다층소탑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탑 안에 봉안하기 위한 사리장엄구이거나 사찰의 불전에 모시기 위한

용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병은 부처님께 맑은 물을 담아 올리는 용기로,

본래 인도에서 수행하는 승려들이 여행할때 들고 다니던 물병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된 이후 관음신앙과 이어져

병을 고치는 도구이자 관음보살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고,

점차 부처님께 맑은 물을 담아 바치는 공양구로 쓰였다


 

 

개태사 쇠북(고려13세기/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기획전시관을 나와 본관 전시실로 들어가본다


  


보고 또 봐도 멋진, 백제예술의 결정체다



   

             금동보살입상(보물제330호/백제/부여 군수리사지)                      정지원鄭智遠이 새겨진 금동삼존불입상(보물제196호/부여부소산)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제293호/백제/부여 규암면)



금동광배(백제/부소산성)




외리 문양전

부여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는 산수,산수봉황, 연꽃 도깨비,산수 도깨비,

용,봉황,구름,연꽃 등 여덟가지 무늬로 구성된 벽돌이 출토되었다(보물제343호)

나무로 만든 거푸집을 사용하여 여러가지 무늬를 새겨 넣고 흙을 밀어 넣어 찍은 다음

가마에서 구워 만들었다

벽돌의 무늬는 이상적인 세계 상서로운 동물과 기운을 형상화 하거나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 등을 담고 있어 백제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초파일 부여에 이어서 오늘은 우연군 혼자 이른 아침

KTX와 SRT를 번갈아 타고서 경주엘 갔다

경주시 문화관광과에서 주관하는 시티투어 1코스를 탐방중이다

태어나 처음 맛보는 경주의 바람은 또 어떠했을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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