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화엄사 각황전

연이♥ 2016. 6. 5. 09:11

2007년 늦가을, 나홀로 노고단 산행길에..





 열아홉 나이에 불사에 참여한 그 목수가 각황전을 다 짓고 났을 때는 일흔아홉이 되어 있었다 한다

실로 육십 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고 그는 그 동안 각황전 언저리를 한번도 벗어난 일이 없었다

 

완공과 함께 머리에 동여맨 수건을 푼 그는 각황전 돌계단을 걸어내려와 뒷개울로 사라졌다

그는 한나절이 넘도록 몸을 씻었다

그리고 그날 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감자 어둠에 묻혀 있던 경내가 갑자기 휘황한 빛으로 밝아졌다

놀란 대중들이 밖으로 나와보니 한 마리의 백학이 현란한 빛을 뿜으며 각황전 위를 너훌너훌 날고 있었다

그 백학은 각황전 위를 세 번 돌고는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목수를 어찌 기술자라고만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각황전이 어찌 솜씨로만 이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솜씨 뛰어난 기술자였을 뿐이라면 그 목수가 어찌 육십 년의 세월을 견디고 참아낼 수 있었을 것인가

매시가 차가운 인내로 채워졌음이고 하루하루가 뜨거운 신심으로 타올라 마침내 시공계를 초월하는 경지에

들어 육십년 세월이 하루같이 된 것이 아닐 것인가

 

인간의 시간으로 그 긴 육십년을 하루로 초월한 청정한 영혼이 빚어낸 솜씨는 또 어떠했으랴

이미 범상을 벗어난 그 솜씨로 빚어낸 것이기에 각황전은 저리도 빼어나고 신비로운 불전이 된 것인가...

 

 

                                                                          ...조정래 장편소설 <태백산맥> 중에서...






2009년 오월, 고3 수험생이었던 우연군과 노고단 산행길에..



2016년 봄, 친정부모님 모시고 섬진강  매화 구경 갔다가..


금산사 미륵전을 보기 위해 모악산 산행을 계획했다면,

화엄사 각황전을 보기 위해 지리산 등산로 가운데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화엄사-노고단 산행을 계획합니다

물론 산행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 화엄사를 찾은 경우도 적지 않지만  매번 화엄사에 갈때마다 보제루를 지나

동서 오층석탑이 있는 대웅전 마당에 들어서면서 각황전의 웅장함과 마주할때 터져 나오는 감탄사는 한결같습니다

우와~!!!


한 장의 사진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하고,

때론 쓸쓸하거나 아픈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사진을 찍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친정 부모님과 함께 했던 홍매화 붉게 피던 봄날의 화엄사는 오래도록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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