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 2007. 10. 12. 13:57

 

 

 

 

 

 

 

산당화

 

                  안도현

 

 

산당화야


산당화야

 

교장선생님한테 불려가 혼나고, 너도

 

숙직실 처마 밑에 나와 섰구나

 

할 일이 많아서

 

그리 많은 꽃송이를 달고

 

몸살난 듯 꽃잎들이

 

뜨겁도록 붉구나 

 

 

 

 

 

 

 

 

명자꽃

 

            안도현


그해 봄 우리 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누나의 아랫입술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도톰한 것을 생각하고는
혼자 뒷방 담요 위에서
명자나무 아파리처럼 파랗게 뒤척이며
명자꽃을 생각하고 또 문득
누나에게도 낯설었을 초경(初經)이며
누나의 속옷이 받아낸 붉디붉은 꽃잎까지
속속들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꽃잎에 입술을 대보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내 짝사랑의 어리석은 입술이
칼날처럼 서럽고 차가운 줄을 처음 알게된
그해는 4월도 반이나 넘긴 중순에
눈이 내린 까닭이었습니다
하늘 속의 눈송이가 내려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달아나는 일이
애당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명자 누나의 아버지는
일찍 늙은 명자나무처럼 등짝이 어둡고 먹먹했는데
어쩌다 그 뒷모습만 봐도 벌 받을 것 같아
나는 스스로 먼저 병을 얻었습니다
나의 약(藥)은 자리에 누워
이마로 찬 수건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어린 나를 관통해서 아프게 한 명자꽃
그 꽃을 산당화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무렵
홀연 우리 옆집 명자 누나는 혼자 서울로 떠났습니다

떨어진 꽃잎이 쌓인 명자나무 밑동은 추했고,
봄은 느긋한 봄이었기에 지루하였습니다
나는 왜 식물도감을 뒤적여야 하는가,
명자나무는 왜 다닥다닥 홍등(紅燈)을 달았다가
일없이 발등에 떨어뜨리는가,
내 불평은 꽃잎 지는 소리만큼이나
소소한 것이었지마는
명자 누나의 소식은 첫 월급으로
자기 엄마한테 빨간 내복 한 벌 사서
보냈다는 풍문이 전부였습니다

해마다 내가 개근상을 받듯 명자꽃이 피어도
누나는 돌아오지 않았고,
내 눈에는 전에 없던 핏줄이 창궐하였습니다
명자 누나네 집의 내 키만 한 창문 틈으로
붉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자진(自盡)할 듯 뜨겁게 쏟아지다가
잦아들고 그러다가는 또 바람벽 치는 소리를 섞으며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그 이튿날,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고,
애비 없는 갓난애를 업고 왔었다고 수런거리는 소리가
명자나무 가시에 뾰족하게 걸린 것을
나는 보아야 했습니다

잎이 나기 전에 꽃 몽우리를 먼저 뱉는 꽃,
그날은 퉁퉁 붓고 머리가 헝클어진 명자꽃이
그해의 첫 꽃을 피우던 날이었습니다


 

 

 

 

 

 

 

퇴근길에 사무실 근처 공원에 갔습니다

 

이른봄 다른 꽃들은 꽃을 먼저 피우느라 분주할때

 

연초록의 잎과 꽃이 함께 피는 산당화가 이 가을에 곱게 피어 있네요

 

사전에 나와있는 꽃이름은 명자꽃 이지만 어쩐지 사람 이름을

 

부르는것 같아서 연이는 산당화라고 부른답니다

 

제철도 아닌데 꽃이 피었다한들 그 아름다움이 어디 갈까요

 

참 예쁘지요? 

 

 

 

 

 

 

 

 

다홍의 꽃을 피운 산당화나무 옆엔

 

산수유 열매가 붉게 익어가고 있었어요

 

가을에 만나는 연초록 빛깔 정말 예쁩니다

 

춘설에 산수유 노란꽃이 보석처럼 빛나던 모습이 생생한데

 

어느덧 이렇게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