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들

무등산

연이♥ 2007. 6. 10. 22:15

 

 

☆ 버스를 타고...

 

모내기가 끝난 유월의 들판에선 초록의 싱그러움이 넘쳐난다.

붉은 황토밭에는 감자꽃이 활짝 피었고 담배꽃도 긴 목을 뽐내며 피어있다.

 

달리는 광주행 직행버스 안에서 황토밭에 핀 담배꽃을 바라보노라니

흑백사진처럼 빛바래고 정지된 영상으로 아득한 옛모습 하나가 떠오른다.

무더운 여름날 담배잎을 따서 말리던 비닐하우스 안에서 훅 끼쳐오던 매콤한

담배냄새와 숨쉬기조차 힘들정도로 뜨거웠던 열기가 그것이다.

 

내 어릴적 기억은 이야기가 아닌 빛바랜 사진처럼 정지된 영상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동네 큰기와집 마당에서 길쌈을 하던 동네 할머니들의 분주한 손놀림과 노랫가락,

윗마을에 있었던 디딜방아에서 곡식을 빻던 엄마와 언니의 발장단과 손놀림,

그리고 대보름날밤에 활활 타오르던 달집 등...

 

빠르게 달리는 차창밖으로 끝도없이 펼쳐진 초록의 들판을 보면서

빛바랜 추억속의 사진첩을 꺼내어 들추어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 나의 산행일지는...

 

2006년 산행일지를 정리하면서 보니 한 해동안 많은 산을 다녔지만 대체로 충청이남

지방에 국한된 산행이었기에 2007년 새해에는 충청이북 지역으로의 진출을 목표로 세웠었다.

 

하지만!

연초에 담양 추월산 가는길에 낸 사고로 인해 많은 경제적 손실과 함께 운전에서 거의

손을 떼다시피 하고 있으니 연초 계획대로 충청이북 지역으로의 진출은커녕 남편에게

사정사정해서 같이 가거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다녀야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움직이기엔 한계가 있다보니 그리 멀리 가지를 못하고

계룡산과 무등산이 교통도 편리하고 거리상으로 적당한데다 두 산 모두 충청과

호남의 명산이어서 아무리 자주가도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니 그나마 다행이다.

 

 

☆ 무등산으로...

 

오늘은 작은 연이와 함께 무등산엘 다녀왔다.

광주 광천터미널에서 증심사행 9번 시내버스를 타면 등산로 입구에서

내리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한 등산을 하기에 그야말로 금상첨화인 셈이다.

 

증심사행 시내버스는 대체로 만원이다.

터미널에서 승차했을때도 이미 앉은 사람보다 서있는 사람이 더 많은 상태였는데

정거장을 지날때마다 7~8명의 등산객들이 계속해서 올라타다보니 버스는 금세 초만원이

되어버렸다.

 

- 아따, 뭐땀시 평일날 안댕기고 복잡허게 일요일날 다들 산에 간다냐!

- 아저씨는 그럼 왜 평일에 안가고 일요일에 가는디요?

- 나사 무등산을 징허게 사랑허니께 그러지라.

- 나도 무등산을 아저씨 만큼이나 좋아항게 평일에도 가고 일요일에도 가고 그러요.

 

ㅎㅎㅎ

출입문 계단에까지 사람이 서야할 정도로 초만원을 이룬 시내버스 안에서

나이 지긋하신 어느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대화이다.  이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도

광주 시민들의 무등산 사랑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니 유월의 숲향기를 점령이라도 하듯

밤꽃 향기가 진하게 풍겨온다.  꽃향기라고 해서 모두 좋지만은 않다는걸 여실히

보여주는게 밤꽃 향기가 아닐까 싶다.^^

 

 

 

중머리재에서...

 

초여름 가뭄이 심했는데 산중턱 바위틈에선 어찌 저리도 거센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지...

 

장불재에서 바라보는 서석대, 입석대

 

무등의 능선...

저 부드러운 곡선이라니~

고무줄놀이 해도 되겠다.^^

 

입석대

 

 

- 두연아, 입석대를 처음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깜짝 놀랜다?

- 걱정마세요, 전 절대로 안놀랄테니까~

- 다왔다, 저기봐!

- 우와!!!

- ㅎㅎㅎ

- 아, 이건 놀랜게 아니라 그냥 감탄사죠~

- 그게 그거거든? ㅎㅎㅎ

 

무등의 하늘

 

어머니 젖무덤같은 무등의 능선...

 

겨울산에 부는 칼바람을 참 좋아한다.

겨울산의 칼바람을 찾아 남덕유산을 찾고 무등을 찾곤 했었다.

내게 무등산은 그렇게 겨울산의 모습뿐인데 오늘 처음으로 초록의 무등을 보았다.

 

 

 

서석대에서 내려다본 중봉 그리고 빛고을

 

서석대에서 도시락으로 준비해간 주먹밥과 유부초밥을 먹었다.

 

- 와, 바람 진짜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시원해요.

- 그렇지? 우리 두연이도 겨울에 이곳에서서 바람 한 번 맞아봐야는데...

 

그래...

두연이에게 무등산은 시원한 바람으로 기억되어 지겠구나...

오래오래 그 바람이 가슴속에 살아있어 삶이 짜증나고 답답할때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었으면 좋겠구나...

 

 

 

 

 

  

☆ 우째 이런일이...

 

하산길에 당산나무 그늘 아래서 시원한 캔커피를 한 잔 마신뒤 여러 갈래의

길 가운데 하나로 내려 가려는데 두연이가 올라올때는 그길로 오지 않았다고 한다.

 

- 무슨소리야, 엄마가 길눈이 얼마나 밝은줄 몰라?

- 엄마, 그럼 저랑 내기 하실래요?

- 어쭈구리~ 좋아, 얼마내기할까?

- 이만원 해요.

- 어라? 너 이만원 있기나 해?

- 엄마나 딴말하기 없기예요.  손 걸어요 자!

 

두연이 녀석이 너무 자신만만한게 어째 좀 꺼림칙 하면서도 아무렴

몇 시간전에 올라온 길을 모를까봐 싶어 손을 걸긴 걸었는데 영 자신이 없다.

 

아니나다를까~

두연이가 주장하는 길을 들어서는데 올라올때 맡았던 진한 꽃향기가 진동한다.

주변에 핀 꽃이 넝쿨장미뿐이어서 어디서 나는 향기인지 고개를 갸웃거린 기억이 난다.

그뿐아니라 조금 내려가니 한무리의 망초가 이제 막 연보랏빛으로 피어있는게 그 길이 맞다.

 

나는 꽃과 향기로 길을 기억하고,

두연이는 가파른 경사와 U자형으로 구부러진 길의 모양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내가 질수밖에 없는 내기였다.ㅎㅎㅎ

 

2007년 6월 10일...

두연이와 함께 평등의 무등산, 그 넉넉하고 시원한 품에 안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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